세상에 작은 취향들이 모여 쉬어가는 곳




VOL.45
세상에 작은 취향들이 모여 쉬어가는 곳
소수책방

동네책방 ㅣ 서울 중구 신당동

작은 독립서점에 들어갈 때면 큐레이팅의 취향과 무관하게 ‘그래도 한 권은 사서 나와야지'라는 은은한 다짐에 둘러싸여 문을 연다. 가끔, 책의 자유로운 열람을 제한하거나 1인 1음료의 서점을 만나면, 들춰보는 손이 조심스러워지지만, 책방도 하나의 사업장이라는 걸 인식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문구다.

하지만 신당동 골목 2층, 북 카페가 되고 싶지 않아 웰컴 드링크는 그냥 내어드리고, 책을 사지 않아도 충분하며, 다 읽은 책은 매입까지 하고 있는 독립서점이 있다. 손님들이 서점 구석에서 책과 잠의 경계를 오갈 때마다 너무 뿌듯하다고 외치시는 책방지기 김문님과 그의 서점 ‘소수책방'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자.


<소수책방>을 소개해 주세요.
농담처럼 망하기 위한 서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서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어떻게 해야 잘 망할까?”라는 질문을 함께 가지고 있었거든요. 모든 것에 끝이 있음을 알고 있고, 그 끝맺음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습관처럼 하는 편입니다.

어떻게 해야 잘 망하는 거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오셨던 분들에게 좋은 서점과 좋은 책으로 기억되는 공간이 잘 망한 서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기준안엔 책을 구매하지 않으신 분들도 포함됩니다. 저는 서점의 문턱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으면 해요. 책을 랩핑해놓거나, 구매 후 펼쳐볼 수 있는 공간들이 있는데 소수책방은 그 반대를 지향하는 공간입니다.

자유롭게 오셔서 개인 책을 읽으셔도 좋고, 구매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편하게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오셔서 책을 더 만지고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들어왔을 때부터 소수책방만의 색깔이 너무 잘 보이는 개성있는 공간인데, 목표가 잘 망하는 거라니! 처음에 책방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거창한 시작은 아니었어요. 사실 이 공간은 저만이 공간이 아닌 3명의 친구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인데요. 그림을 하는 친구가 화실로 사용하는 공간이 있고 (@doyun1159) 패션 디자인 하는 지인분과도 함께 공유하고 있어 (@sundaypersona) 이분들의 작품과 디자인도 서점 곳곳에서 찾아보실 수 있답니다.
저도 글을 쓰기 때문에 처음엔 작업실의 개념으로 시작했어요. 사업자를 내게 된 것도 “서점을 열어서 돈을 벌자!”가 아닌 판매 전 가격으로 책을 받아보고 싶은 욕심이 컸답니다.(웃음) 그래서 처음에 손님분들이 정말로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 '어떻게 알고 오신 거지?' 하며 많이 당황하기도 했었고, 카드 단말기도 준비가 안되어 결제를 못해드린 분이 계실 정도로 시작부터 완벽하게 준비된 공간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서점을 운영할수록 제가 더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이 크게 들더라고요. 책을 쓰는 입장에서 언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고, 또 같이 책을 나눌 수 있는 분들을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에너지를 받고 있다고 느껴요.

작업실로 시작된 공간이 이렇게 멋진 서점이 되다니! 정말 의외의 비하인드 스토리네요. 이런 공간의 정체성일 수도 있는 ‘소수책방’의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많은 분들이 Minority의 소수로 알고 계시는데, 사실은 '숫자 소수 (prime number)'의 뜻을 가지고 있어요. 소수라는 게 나 자신과 1로만 나누어지는 숫자잖아요.

그 개념을 인간에 빗대어봤을 때,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미분하면 무엇이 남게 될까. 나 자신을 나로 나눈다면 무엇이 남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름이에요. 결국 미분 후 남는 것은 내가 가진 기억, 언어, 사유들이 남을 텐데 저는 그것의 총체가 책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그 숫자 1이 저에겐 책인 거죠.

중의적 의미로는 사실, 많은 분들이 직감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다수보다는)소수만을 위한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이 공간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담을 수 없고, 담을 필요도 없다 생각하거든요. 이 서점도 다수를 위한 공간이기보다는 같은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소수를 위한 분들의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소수(prime number)의 의미를 담은 책과 이를 같이 즐길 수 있는 소수를 위한 서점이라니. 공간을 너무 잘 담은 이름이네요. 이런 ‘소수책방’ 서가에는 꽂혀있는 책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시나요?
초반에는 정말 제 취향에 의존해서 가져온 것 같아요. 시와 문학 중심이었는데 오시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에세이나 다른 분야에 대한 수요도 느껴지더라고요. 소설은 그 소설이 가진 세계 자체가 공고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적지만 특히 에세이는 그 책을 사는 공간과 상황에 따라 책의 특성이 많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같은 에세이 책도 교보문고에서 사느냐, 제주도의 작은 독립 서점에서 사느냐에 따라 책의 느낌과 무게가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에세이를 가져올 땐 저희 서점의 컬러와 맞는 책을 고르기 위해 많이 고민하는 편이에요.

서점에 들어오는 순간 느껴지는 소수책방만의 아늑한 느낌이 있는데, 공간을 만드실 때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나요?
제가 책에 집중하는 순간을 생각해 보면 항상 밤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명으로 그 시간을 구현하고자 했고, 오시는 분들께 어둠 속에서 오는 이상한 안락감과 살아있으면서도 자고 있는 듯한 순간, 그리고 모두가 자고 있는 밤 나만 깨어있는 듯한 그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전체적인 조명은 어둡지만 간접등, 스탠드를 통해 독서에 편한 조명을 만들었습니다.

또 좋아하는 브랜드를 생각할 때 저는 그 브랜드의 컬러가 먼저 떠오르거든요. 소수책방은 파란색의 브랜드 컬러를 가져가고 싶어 서가의 조명은 파란색을 많이 사용했어요.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숨을 수 있는 공간인데요. 저는 어떤 공간이든 주인의 눈 밖에 나는 공간(?)이 일종의 자유를 가져다준다고 느껴요. 그래서 저희 서점에서도 '제가 전혀 볼 수 없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해서 이 공간을 만들게 되었어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책이나 음료를 꼭 구매하시지 않아도 편한 공간으로 느껴졌으면 하는 마음이 큰데, 실제로 개인 책을 가져오시거나 책을 읽다가 주무시는 분들을 발견하기도 해요.

지금 인터뷰이님처럼 (정말로..?) 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계신데, 사실 그분들이 이 공간을 가장 잘 이용하고 계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잠과 책의 경계를 오갈 만큼 편안한 공간을 만든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공간뿐만 아니라 책방지기님의 존재도 큰 이유일 것 같아요. 소수책방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있을까요?
한 달에 한 번 영화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가장 최근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를 함께 감상하고 비평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함께 참고할 수 있는 논문이나 비평을 많이 가져오는 편입니다. 혼자 감상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의견을 나누면 좀 더 감상의 지평이 넓어진다고 느껴요.

개인적으로는 트레바리에서 영화와 전시를 함께하는 독서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시즌 4개를 거쳐 1년 반 정도 되었네요. 영화 독서 모임 이외에 매주 시 수업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서대경 시인께서 진행하시는 수업인데, 개인적으로 저에게도 참 많은 영감을 주는 시간이에요.

책방지기님의 취향이 잘 드러나는 모임이네요! 이외에 매주 일요일은 서점에서 핸드폰을 수거하신다고 들었어요. 저도 항상 '차라리 누가 내 핸드폰을 뺐어줬으면…'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웃음) 막상 오시는 분의 휴대폰을 수거하는 게 쉽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처음 오시는 분이나 어르신분들은 가끔 당황하실 때도 있는데, 이렇게 책에 둘러싸여 있는 저 조차도 독서를 할 때 휴대폰이 많이 방해가 된다 느끼거든요. 그래서 이 공간만큼은 휴대폰 없이 외부와 단절된 세계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해 봤어요. 그리고 또 휴대폰을 수거할 때 은근한 쾌감(?)이 있답니다.(웃음)

잔잔하면서도 다이내믹한 일들이 매일매일 벌어질 것만 같은 책방이에요! 소수책방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살짝살짝 졸 수 있을 만큼 편한 공간으로 느껴주실 때, 추천받은 책을 좋아해 주실 때 등등이 있을 것 같아요.

하나만 뽑긴 너무 어렵지만, 가장 최근에는 생일날 오신 분이 있었어요. 생일은 참 특별한 날이잖아요. 그런 날 저희 서점을 방문했다는 게 정말 기쁘더라고요. 그래서 그 날 서비스를 팍팍 드렸답니다! 오시는 분들이 생일날 생각날 만큼 특별하고 소중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서점을 시작하기 전에도 책과 가까운 일상이었겠지만, 서점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점이 있을까요?
책을 더 많이 읽게 된 것도 있지만, 제가 쓰는 글의 영역이 넓어진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서점을 시작하기 전엔 시를 집중해서 썼다면 지금은 단편 소설과 시나리오까지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거든요. 여전히 시가 제 자신에겐 핵이고 원료라고 느끼지만, 좀 더 대중적인 영역의 글을 창작하는 일도 매우 즐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책을 추천드려요.

추천 책이라는 게 모든 이들이 한 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는 책이잖아요? 점점 미술을 감상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음에도, 가끔 의식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아직까지 예술을 왜 감상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많고 반대로 너무나도 감상의 방법론에 메여있는 분들을 만날 때 꼭 추천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해석에 반대한다
수전 손택 지음 | 독립출판
Editor
정재원
jaewon10455@flybook.kr
〔소수책방〕

◦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20길 26 2층
◦ 운영시간 | 수~금 14:00 - 20:00 | 토 12:00 - 18:00 | 일 14:00 -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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