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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이야기
조수경 외 3명 지음
arte(아르테) 펴냄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폰으로 얼마 남지 않은 서평 마감 시간에 맞춰 글을 쓴다. 📝
‘팬데믹 테마 소설집’이라는 낯선 이름이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게 된 요즘. 여름과 겨울, 도시와 시골이 오간 내용을 다룬 이 소설을 접하게 되서 참 재밌었고 현실적이다. 단순한 팬데믹 현상을 보여준 것이 아닌 그로 인한 실직과 TK 봉쇄, 비슷한 시기에 발화한 ‘n번방’사건까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을 약간의 조미료로 각색했다. 네 편의 단편 소설들은 슬프고 아팠던, 지금까지 진행중인 2020년 대한민국의 쓰라린 표면을 글로써 보여주고 있다.
며칠이 지나도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대한민국 청도를 배경으로 한 단편집의 두전째 소설, 「특별재난지역」. 주인공의 나이가 언급되지 않지만, 어림잡아 60대 여성으로 보여지는 ‘일남’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떻게 그녀를 설명할까, 잠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부친 대명의 딸이고, 손녀 가영의 할머니이고, 딸 상희와 아들 상진의 엄마이고, 남편 경호의 아내인 ‘일남’이다. 미혼부인 아들 상진을 대신해 손녀 가영를 키우며 치매 걸린 부친을 돌보던 그녀의 삶은 전염병으로 인해 보상받지 못한 모습이 오래도록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동안 일남이 부친에게 바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건강하게 오래 계시다가 좋은 날 편히 가시는 것, 호상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왔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손 한번 잡아드리고 싶었고, 그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듣고 싶었다. [⋯]동생과 함께 빈소를 지키면서 주변 친지며 이웃 사람 모두 불러 조문을 받으려 했다. 그간 일남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아버지 모시느라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는 공치사를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정도는 기대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내게 그만한 자격도 없느냐고,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p.93, 「특별재난지역」
#크림슨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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