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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 S. 루이스 지음
홍성사 펴냄

본래는 영어 원서책인 줄 알고 샀던, 책이었는데 다 읽은 지금 되려 한글로 읽어 감사하단 마음이 든다.

선배 삼촌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후배 악마 웜우드에게 편지를 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웜우드의 편지는 내용에 없고 일방적으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만 나오는 게 더 내용의 흥미를 돋는다. 읽는 내내 작가 루이스의 깊은 영적 통찰력과 악마들의 대화에서 나오는 반어법적인(?) 표현력에 세심하고 두렵고 치밀하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읽는 게 더 더뎠던 이유로는 스크루테이프가 웜우드에게 훈계하며 가르치는 환자(인간)를 어떻게 하면 악에 세계로 꼬시는 부분들에 있어서 실제 내가 겪었던 부분들이 상당했고, 나의 그릇된 모습을 글로 보게 되며 두려운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인상깊었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에필로그 부분처럼 크리스천 내에서도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것으로 보이지만, 꼭 한 번 쯤은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빌어먹은 사실은, 인간의 눈에는 신들이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는 게야. 놈은 신을 만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존재 자체까지 의심했다. 그런데 막상 신들을 만나는 순간, 자기가 처음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기 혼자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삶의 시간 시간마다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해 주었는지도 깨닫게 되었단 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일일이 “당신은 누구시죠?”라고 묻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이었군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거야.”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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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0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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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림슨리브님의 내면의 방 게시물 이미지
잔잔하게 흐르는 시냇물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점진적으로 강을 넘어 바다로 흘러가며 깊어진다. 작가의 현재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 30여 년 전의 젊은 날을 회상하며 쓴 에세이.

글은 그녀가 옛날 사진을 훑어보다가 오래전 뉴욕의 아파트에서 베이비샤워를 했던 사진을 보며 시작한다. 그때까진 행복했던, 모든 것이 조화로웠던 그녀는 몇 달 후 그녀에게 닥칠 크나큰 시련을 아직 알지 못했다. 그녀의 딸 애나는 심장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그녀는 자신의 품이 아닌, 차디찬 묘에 뭍혀야 했고 이 슬픈 일을 기점으로 그녀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과연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정상일 사람이 누가 았을까? 하물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그 심정. 가히 상상할 수도 없다. 마음이 아프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그녀의 몸은 조금씩 망가져 갔고, 곧이어 그녀의 정신도 앗아갈 정도로 위험해졌다. 현재 50대의 그녀가 20대 때의 일을 다시 꺼내며, 흡사 저자와 함께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매우 상세하게 묘사된 정신병원의 이야기와 우울증 병에 대한 이야기. 비록 난 아이를 잃은 슬픔을 알지 못하지만, 나 또한 우울증을 앓던 사람으로 그녀의 묘사와 글에 상당 부분 공감하게 된다. 밝게 쓰이지 않은 글이지만, 딱히 어두컴컴한 병원 복도를 걷는다는 느낌보다는 저자와 함께 병동을 거니는 느낌이다. 놀라웠던 점은 그녀가 우울증에 관한 글을 쓰며 언급한 여러 사례들과 그 역사적 배경들이다. 예를 들자면, ‘멜랑콜리아’라고 익히 듣던 단어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해서 만든 것(melan은 ‘검은, 어두운. 흐릿한’이라는 뜻이고, khole는 ‘담즙’이라는 뜻)이란 것이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점이다. 가감없는 그녀의 솔직한 우울증에 관한 심정이 내게 위안이 된다. 나만 그것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 지구 반대편도 나와 동일한 감정을 느꼈던 사람이 있다는 것.

광기를 완화하려면 치료보다는 예방에 힘써야 한다.
-p.148

병원, 그냥 병원이 아니라 정신 요양소,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은 그 기만극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우리가 겉으로 내보이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제 게임은 끝났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멀리 표류했는지를 계속 비밀로 숨기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병원은 더 이상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우리를 받아들였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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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방

메리 크리건 지음
북트리거 펴냄

👍 불안할 때 추천!
2020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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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림슨리브님의 쓰지 않을 이야기 게시물 이미지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폰으로 얼마 남지 않은 서평 마감 시간에 맞춰 글을 쓴다. 📝

‘팬데믹 테마 소설집’이라는 낯선 이름이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게 된 요즘. 여름과 겨울, 도시와 시골이 오간 내용을 다룬 이 소설을 접하게 되서 참 재밌었고 현실적이다. 단순한 팬데믹 현상을 보여준 것이 아닌 그로 인한 실직과 TK 봉쇄, 비슷한 시기에 발화한 ‘n번방’사건까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을 약간의 조미료로 각색했다. 네 편의 단편 소설들은 슬프고 아팠던, 지금까지 진행중인 2020년 대한민국의 쓰라린 표면을 글로써 보여주고 있다.

며칠이 지나도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대한민국 청도를 배경으로 한 단편집의 두전째 소설, 「특별재난지역」. 주인공의 나이가 언급되지 않지만, 어림잡아 60대 여성으로 보여지는 ‘일남’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떻게 그녀를 설명할까, 잠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부친 대명의 딸이고, 손녀 가영의 할머니이고, 딸 상희와 아들 상진의 엄마이고, 남편 경호의 아내인 ‘일남’이다. 미혼부인 아들 상진을 대신해 손녀 가영를 키우며 치매 걸린 부친을 돌보던 그녀의 삶은 전염병으로 인해 보상받지 못한 모습이 오래도록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동안 일남이 부친에게 바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건강하게 오래 계시다가 좋은 날 편히 가시는 것, 호상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왔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손 한번 잡아드리고 싶었고, 그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듣고 싶었다. [⋯]동생과 함께 빈소를 지키면서 주변 친지며 이웃 사람 모두 불러 조문을 받으려 했다. 그간 일남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아버지 모시느라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는 공치사를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정도는 기대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내게 그만한 자격도 없느냐고,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p.93, 「특별재난지역」

#크림슨리브

쓰지 않을 이야기

조수경 외 3명 지음
arte(아르테) 펴냄

2020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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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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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림슨리브님의 카사노바를 쓰다 게시물 이미지
‘호색가’를 뜻하는 카사노바(Casanova)가 실존했던 인물이란 것을 우연히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통해 읽게 된 카사노바의 삶은 익히 ‘호색가’적 이미지 그대로였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카사노바는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에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란 좌우명을 갖고 직진하는 삶을 살았다. 부러움의 감탄이 아닌 경이로움의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의 삶은 정말이지 소설보다 소설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호색적 삶을 좋게 옹호하거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진 않는다. 그의 삶을 처음 보는 동물을 본 것처럼 신기하지만, 책을 절반 정도 읽어내려가서부터는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과대평가될 삶인가?’ 싶은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한다. 흥미로워 보게 된 만큼 의무감으로 마지막 장까지 읽었지만, 두 번은 보지 않을 그의 삶일 듯하다.

“나를 어딘가에 매우 두려는 생각은 나에게 항상 역겨웠다. 이지적인 생활테도는 내 천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참된 직업은 어떤 직업도 갖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느꼈다. 모든 직업과 학문을 적당히 맛보고, 배우처럼 매번 의상과 배역을 바꾸는 것이 자신에게 구석하는가!
-p.57

#크림슨리브

카사노바를 쓰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0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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