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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의 표지 이미지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020.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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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부터 누구나 시를 배우지만 모두가 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문학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라 문제가 많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지만, 사실 수동적으로 지식만 빨아들이는 학생이었던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답이 정해져있고 나는 외우기만 하면 되는 형식의 수업이 물론 편했다. 길게 보면 나에게 하나도 좋을 것 없는 방식이기는 했지만, 공감각적 심상에 밑줄 치고 수미상관을 체크하며 읽는 시가 편하고 익숙했다. 시를 정서적 산물이 아닌 이성적 산물로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고등학교도 졸업했으니 그런 방식의 시 독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을 하며 읽은 책이지만, 눈에 익은 시가 나올때마다 습관적으로 시어의 시적 의미를 찾게 되고, 표현법을 찾고 있었다. 그게 내가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입어온 단단한 껍질이었고, 작가는 그 껍질을 벗겨내려 하고 있었다. 모두가 아등바등 살아가며 감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을 할 때, ‘키팅’ 선생처럼 저자는 독자들에게 ‘의술, 법률, 사업, 기술 등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시는 지금의 SNS 세대에게 딱 맞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길고 장황한 것보다 짧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SNS의 주된 목적인데, 시의 목적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글들을 우리가 잘 읽고 느껴야한다.

짧은 문장들에 들어간 수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를 보면 마치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지만 사실 우리 삶의 모든 그곳들에 시가 존재한다. 평생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느꼈지만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던 김소월과 신경림, 생활이 어려웠다던 함민복 ... 시인들은 결코 먼 곳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당장 내 친구, 내 가족,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배웠던 시의 그 해석이 정말 맞는지 반문하게 됐다. 김수영의 <풀>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시라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그러게, 너무 단순하지 않니? 김수영 시인이 이렇게 썼겠니?’라고 묻는다. 저자의 언어로 다시 들어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해석이 나온다. 시의 주인은 쓴 사람이 아니고 읽는 사람이기 때문에 각자의 생각은 모두 다르고 시를 읽는 방법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좁은 시야를 가지고 읽는 것은 분명한 오답일 것이다.

후세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시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들에게는 분명한 고통이었겠지만 그 고통을 남긴 글은 후세의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가 되어 다가온다. 글이 가진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글은 시공간을 초월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닥 잘 읽히지가 않아서 중간중간 많이 루즈해졌다. 그게 낮은 별점의 이유이다.)
2020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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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와 영원 사이에는 정말이지 작은 차이밖에 없다.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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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11.
차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 어떻게 보면 엄마는 본인이 가진 자갈, 바위, 돌이 섞인 미운 흙들을 온몸으로 고르고 골라 고운 흙만 저에게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 2018년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20대 후반 여성들은 같은 남성들 월평균 임금의 91.7%를 받는다. 하지만 30대 초반이 되면 남성들이 천 원을 벌 때 여성들은 837원을 벌고 30대 후반엔 723원까지 떨어진다.

📖 비정규직 여성 비율도 연 령대가 올라가면서 급증한다. 30대 후반에서는 여성의 30.8%가 비정규직이다. 이는 40대 후반 37.1%, 50대 후반 50.8%로 가파르게 오른다. 남성 비정규직 비율이 30대 후반 14.6%, 40대 후반 20.0%, 50대 후반 22.6%로 완만하게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 엄마는 그간 가족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나 생계부양자 같은 호칭은 남성에게만 명예롭게 주어졌다.

📖 페미니즘은 많은 딸에게 '그냥 우리 집 일'로 여겨지던 것들을 사회적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 만약에 '엄마'라는 명함이 존재한다면 저는 아주 크게 찍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명함은 원치 않더라고요. 엄마,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니야? 하죠.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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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06.
잠원동을 떠난 뒤 한동안은 잠원동이 죽을만큼 싫었다. 나의 집들과 가구와 벽지와 형광등까지, 잠원동의 신호등과 아스팔트마저 내 우울을 머금은 것처럼 무겁고 더럽고 혐오스러워보였기 때문이다. 집은 거주공간보다는 삶의 부분을 차지함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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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보낸 것은 개 한 마리가 아니라 다정한 존재와 함께한 내 삶의 한 시절이었다. 가끔 피피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에 없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시절을 부르는 일이었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지음
라이프앤페이지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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