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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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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모르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학창 시절에 지겨우리만큼 보고 듣고 읽은 시들의 작가다. 학교를 다닐 때, 일제강점기의 저항 시인, 순수 시인이라고 배웠다. 대단하신 분, 우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분, 존경스럽다. 이런 생각들은 가지고 있었다. 다만 한 번도 윤동주의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워낙 유명한 시인이라, 요절을 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몇 세에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자세히 알아본 적은 없었다. 최근에 한국사 공부를 하면서 나름 가까운 과거라 더 와닿고 더 궁금했던 부분인 일제강점기 부분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오래 전부터 읽고 있던 책 아리랑과 겹치는 부분이어서 그랬던 점도 있지만, 일제강점기는 정말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와 몇 년은 같은 공기를 마셨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생각보다는 가까운 그 사람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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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단 한번도 진심으로 웃고 좋아해 본 적 없다는 젊은 사람, 세상에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조국이 없었던 사람, 조국을 가진다는 것 자체를 실감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모두의 인생은 가치로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인데, 왜 이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 가혹했을까. 운명의 장난처럼, 동주와 몽규가 세상을 떠나고 약 반년 뒤, 우리는 조국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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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가 눈을 감는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절히 느꼈을 만한 묘사가 많이 나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슬펐고 고통스럽기도 했다. 겹쳐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이게 진짜 일어났던 일이라는 걸 믿고 싶지도 않았다.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다. 물론, 죽기에 적당한 나이라는건 존재하지 않지만, 어떤 일도 마음껏 좋아해보지 못했다는 청년이 세상을 떠난다는 건 너무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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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탄생 이래로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우리가 꼭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우리의 이 평화가 어디서 온 것일까. 우리라고 영원히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과거의 사람들, 슬픈 인생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행복이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이 행복은 분명히 값을 치른다는 점을 명심하고 싶다. 마냥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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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p - 어린 중학생부터 전문학생들까지 군사 훈련을 시키는 것을 보면, ‘지원’이 언제 ‘징집’이 될지 모를 일이었다.
📖 245p - 연전에 있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말과 글이 다르고 지내는 곳이 달라도,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점이다. 자신이 놓은 시대와 사회의 제약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이 던져 주는 질문을 붙들고 열심히 해답을 찾으며 살아간다.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자신의 삶에서 다 플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른 세대에게 넘겨준다. 이 세상에 사유하는 인간이 스러지지 않고 남아 있는 한,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대를 이어 가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거쳐 가며,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질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의 나라도 빼앗고,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모욕하는, 심지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생명마저 빼앗아 버리는 야만의 시대라 해도......
📖 259p - 아예 이러한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지내야 했을까. 공부방 바깥의 세상을 모르는 이들처럼 고등 문관 시험 준비나 열심히 해야 했을까. 희욱의 모범생 선배들처럼 조선어를 못하는 것에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웃는 얼굴로 일본 말을 주고받아야 했을까. 식민지 체제를 엄연한 ‘사실’로 인정하는 조선의 선배 지식인들처럼, 생각도 일본어오 하고 글도 일본어로 쓰며 살아야 했을까. 그들은 조선 청년들도 일본인과 똑같이 전쟁터에 나가, 진정한 내선 일체를 이루어 내자며 독려하고 다닌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지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앞장서 떨치고 나서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속으로라도 잘못된 것에 저항하며, 때로 마음 맞는 벗들과 생각을 나누며 지냈으리라. 그렇다면 지금의 시간은 자신의 삶에서 예정되어 있던 것인가.
📖 269p - 1944년 봄, 담장 밖에서는 조선 청년들이 전쟁터로 끌려가고 있었고, 담장 안의 동주와 몽규는 낯선 나라의 낯선 감옥으로 또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 286p -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 되는 삶. 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한번 싱그럽게 웃어 보지도 못했고, 어떤 일을 마음껏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 / 나를 부르지 마오-. 동주의 헛소리에 순찰하던 간수가 감시구로 들여다보았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는 죄수였다. ... / 동주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 290p - “어머니!” / 누워 있던 동주가 소리 내 어머니를 불렀다. 마지막 힘을 내어 동주의 심장이 토해 낸 말이었다. 그리고 가만가만 뛰던 동주의 맥박은 마침내 멈추었다.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흘려내렸다. 고요하 바람에 스치는 별들만이, 동주의 외로운 감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292p - 동주의 장례가 있던 그다음 날, 몽규도 후쿠오카 형무소 독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동주가 떠난 지 이십 일이 채 못 된 3월 7일이었다. 사촌 형제이자 잣이었던 두 사람은, 태어난 해도 떠난 해도 같았다.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나 연희 전문을 거쳐 일본이 유학하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기까지, 살다 간 흔적도 같았다. 이 세상에는 몽규가 먼저 와 동주를 기다렸으나, 다른 세상에는 동주가 먼저 가 몽규를 기다렸을 따름이다.
📖 302p - 자신과 동주 형 사이에 놓인 삶과 죽음의 장막을 잠시만이라도 걷고, 이 소식만은 전해 주고 싶었다. 형이 얼마나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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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빈님의 인생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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