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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더클래식 펴냄

갈수록 책을 읽으며 불편한 순간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20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힌 문학 작품 1위에 빛나는 소설이고,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감상평도 한가득인데, 마치 하루키 책을 읽었을 때처럼 나만 잔뜩 화가 나나 보다.

책은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 알제리에 사는 프랑스인 주인공 뫼르소의 이야기로, 양로원에 계시던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엄마의 죽음은 그다지 뫼르소에게 슬픔으로 다가오지는 않았고, 그래서 장례식에서 울지도, 마지막으로 시신을 보며 작별 인사를 건네지도 않는다. 동네로 돌아와 연애를 시작하고, 이웃 주민들과 친분도 쌓는다. 성매매 포주에다 데이트 폭력을 일삼다 아랍인 패거리에 위협을 받게 된 이웃 레몽과 쿨한 대화로 친구가 된다. 레몽과 함께 바닷가에 사는 레몽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아랍인 패거리를 마주친다. 어쩌다 저쩌다 아랍인이 꺼내든 칼에 반사된 햇빛이 눈이 부셨네 어쩌네 하며 뫼르소는 권총을 쏴서 아랍인 하나를 죽이게 된다. 더불어 세 발 더 쏘는 확인사살까지 잊지 않는다.

2부는 감옥에 잡혀들어간 후의 이야기다. 어찌 보면 뫼르소는 레몽의 구여친을 때리지도 않았고, 아랍인이 먼저 칼을 뽑아 들었으니 마침 총을 가지고 있던 뫼르소가 총을 쏜 것은 정당방위일 수 있겠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는다. 주변인들의 증언을 듣자 하니 젊은 아들이 아프지도 않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놓고 3년간 찾아가지도 않다가 장례식에서는 울지도 않고 담배나 피우고 밀크커피나 마시다가 장례식 끝나자마자 데이트를 하며 코믹영화를 보고 시시덕거리는 놈이기에 흉악범임이 마땅하다는 것이 법원과 사람들의 판단이었다. 엄마 장례식엔 슬프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나쁜 놈으로 몰리는 상황에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결국 사형을 선고받고, 그를 갱생시키려는 사제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다가 행복하다는 말로 이야기가 끝난다. (오잉)

소설을 다 읽고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두 개가 있었다. 뫼르소의 여자친구 마리가 본인을 사랑하는지 묻자, 사랑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대답한다.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 물었을 땐,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한다. 잠시 불쾌한 듯하던 마리는 뫼르소가 살인죄로 잡혀들어간 다음에도 한동안은 결혼이야기를 한다. 아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이런 부분에서 강력하게 하루키가 느껴진다. 감정은 쏙 빠지고 이성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여자들에게는 뜨거운 사랑을 받는 차가운 도시 남자 쿨병에 찌든 남자주인공이라니. 진짜 가지가지 한다.

또 한 가지는 뫼르소가 교도소에 들어간 지 며칠이 지난 후 침대 틈에서 발견한 오래된 신문 기사 내용이 인상 깊었다. 어떤 체코 남자가 돈벌이하러 마을을 떠났다가 십수 년 후에 돈을 잔뜩 벌어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체코남은 여관을 운영하던 어머니와 누나를 놀래켜주기 위해 아내와 아들은 다른 여관에 보내고 어머니의 여관에 숙박객인 척 돈 자랑을 하며 체크인을 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못 알아본 채 돈만 보고 누나와 함께 체코남을 죽이고 강에 던져버린다. 다음날 체코남의 아내와 아이가 ‘그는 당신 아들이오’ 하니 어머니는 죄책감에 목을 매고 누나는 우물에 뛰어내린다. 이 신문 기사를 읽고 또 읽던 주인공 뫼르소는 거짓말을 한 체코남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감상을 남긴다. 그래서 본인은 아랍인을 죽일 때 햇빛 때문에 죽였다고 솔직하게 말해서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결국 죽은 아랍인도 하필 태양이 내리쬐는 상황에 각목도 아닌 칼을 꺼내 들어서 본인을 눈부시게 만들어 총을 쏘게 했으니 책임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범죄 미화가 나타난다. 일단 어머니 장례식에 대한 부분은 범죄까지는 아니니 넘어간다. 장례식 이야기로만 질타를 받는 것에 억울함과 “부조리함”을 느끼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다. 하지만 성매매 포주와 데이트 폭력을 미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레몽이 성매매를 알선하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전여친을 죽어라 패고 있지만 나는 경찰을 싫어하니 신고하지 않겠다, 레몽이 전여친과 어떤 사이였는지 눈곱만큼도 모르지만 ‘여자가 버릇없이 굴었다’고 증언하는 것쯤은 별것도 아니라고 늘어놓으며 그게 마치 쿨한 사람의 행위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 불쾌했다. 실제로 때리지 않았다고 해서 폭력이 성사되지 않는 건 아니다. 사이버 폭력도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가듯, 뫼르소가 레몽의 전여친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도록 편지를 대필해준 것도, ‘여자가 버릇없이 굴었다’고 증언한 것도 결국 폭력이며, 그로 인해 발생한 아랍인들과의 대치까지 이어졌으니 충분히 뫼르소는 큰 죄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웃 할아버지가 반려견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고 산책하면서도 억지로 끌고 다니다가 개를 잃어버리는데, 그 후에 외로움을 느끼며 뒤늦게 개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는 할아버지를 안쓰럽게 표현하며 주둥이로만 돕는 부분도 어이가 없다. 개가 자유를 위해 도망친 것 같은데요. 그렇게 사랑하면 욕하고 패지 말았어야죠.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가 진짜로 불쌍하면 같이 나가서 찾는 시늉이라도 하시든가요, 뫼르소씨. 게다가 총이라는 게 그냥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알아서 조준이 되고 사람을 향해 날아가는 것도 아닌데, 장전을 하고 조준을 하고 발사까지 해놓고 무슨 태양 때문이었다는 둥 헛소리를 하시는지요. 거기다 세 발이나 더 확인사살을 해놓고는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와 억울하다는 소리는 왜 하시는 건지 저는 당최 맑은 시선으로 읽을 수가 없습니다.

작가가 사망한 지 50년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여 (현재 기준은 70년) 카뮈가 사망한 지 50년 차인 2010년부터 한국에도 이방인 번역본이 엄청나게 출간되었다고 한다. 출판사별로 책 부록의 내용이 다 다른데, 민음사의 이방인에는 편지가 수록되어있다. 이방인을 연극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작자의 편지에 카뮈가 답장을 보낸 편지. 그걸 통해 알베르 카뮈가 작품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내가 읽은 더클래식의 이방인은 영어 공부용이라 영문판이 함께 실려있다.

카뮈는 알제리가 프랑스에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에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다. 그래서 이런 배경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나보다.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를 한국에 빗대어 말하자면 이렇다. 한국이 일본에 식민지배를 당하던 시절, 경성에서 태어난 일본인이 한국인을 쏴 죽이는 이야기. 이렇게 생각하니 뫼르소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결말이 꽤나 마음에 든다.

...

독서 모임에 다녀왔다. 독서 모임에서 다루지 않았다면 아마 빠른 시일 내로는 읽지 않았을 책인데, 덕분에 읽어볼 수 있어 감사하다. 책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읽어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볼 수 있어 기대되기도 했다. 제발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 나와는 다른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뫼르소가 '또라이' 같다는 의견으로 대동 단결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점 모두 뫼르소에 공감하는 이야기도 털어놓게 되었다. 나는 총을 한 번 쏘는 건 실수라고 할 법도 한데, 네 번이나 더 쏜다는 건 확인사살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권총을 배워본 분들의 의견을 듣자 하니 권총은 기본적으로 두 발 이상 쏘게끔 배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하게 죽여야 해'라는 마음이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계속 쏘게 된다는 말을 들으니 미경험자의 입장에서는 확실하게 납득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모두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읽었더니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부분도 있고, 부록과 해설도 각자 다른 점이 흥미로웠다.
2020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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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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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을 읽으면 신비로운 감정에 휘말린다. 어딘가엔 있을 법한, 주변에 있을 법한, 혹은 나일 수도 있을 법한 한 사람의 마음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데비 챙, 숲의 끝, 저녁 산책, 호시절이 특히나 좋았다. 의도치 않은 오해, 사랑과 우정의 그 비슷하고도 애매한 감정, 자연스러움 속 의문을 품게 만드는 불편함 등이 너무 잘 표현되어 있다.

애쓰지 않아도

최은영 (지은이), 김세희 (그림)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22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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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나님의 It Ends with Us 게시물 이미지
표지 속 파란 백합꽃 그림에 이끌렸다. 매일 한 권씩 공개한 시리즈물이라 짧게 짧게 27권까지나 있다고 하니, 가볍게 하루에 한두 권씩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렇게 네 시간 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고 심지어 우느라 막힌 코훌쩍이는 소리에 아기가 깨진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로맨스인 줄 알았다. 인터넷 로맨스 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이미 처음부터 상당히 재밌었고, 5권쯤 읽어갈 땐 너무 로맨틱 자극적이라 이 소설에 심취해 읽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읽는 내내 제목이 신경 쓰였다. It Ends With Us의 Us는 화자 릴리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아무래도 아틀라스일까? 이 사랑 이야기의 끝은 누구와 함께하는 걸로 끝날까? 그런데 왜 한국어 제목은 ‘우리가 끝이야’일까? 우리가? 우리로? 한 권 한 권 넘어갈 때마다 궁금했는데, 26권 마지막이나 되어서야 알았다. 로맨스의 끝을 뜻하는 게 아니었구나.



가정폭력을 당하고도 상대방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몰랐다. 나도 주인공 릴리처럼, 피해자들이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줄 몰라서 안 떠나는 거라고 생각해왔나보다. 그런데 이 책이 나를 완전히 납득시켰다. 폭력가정에서 자란 릴리가 또 자신의 가정 속에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도 나는 이 소설이 끝나기 직전까지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27권 중 26권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주인공이 딸에게 하는 말 ‘이 가정폭력의 대물림은 우리에서 끝내는 거야’에서 나온 It Ends With Us라는 걸 알았다.



제법이다. 나도 라일에게 꿈뻑 속아 넘어갔다. 아버지 장례식날 속이 답답해 올라간 고층 건물 옥상이라는 인소에나 나올법한 첫 만남, 갑자기 뚝딱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열었더니 대뜸 성격 좋고 예쁘고 착한 밀리어네어가 심심해서 일하겠다고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남주의 여동생이고, 남주는 큰 병원 의사에, 진지한 만남 싫어파인데 여주를 만나고서 사랑을 알게 되고, 어쩌다 여주에게 해를 가하지만 알고 보니 또 엄청난 일을 겪어서 트라우마로 인해 발현되는 행동이었다니 나 같아도 두 번 세 번 용서하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약자 폭행에 있어 이유가 되어줄 순 없다. 라일이 아무리 화나도 마동석 앞에서 퓨즈가 나가진 않을 것 아닌가? 감히 릴리를 힘으로 밀치고 이마를 꼬매야 할 만큼 세게 박치기를 하다니 빌어먹을 자식.



작가는 본인이 자라온 가정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와서 이야기를 적었다고 한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가정폭력을 당해온 피해자들을 위한 글을 적고 싶었다고. 다른 건 몰라도 피해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확실히 되었다.



찾아보니 올해 곧 아틀라스를 중점으로 한 소설 It Starts With Us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이건 확실히 로맨스 소설이겠다고 생각하는 건 또 나의 착각이려나. 아틀라스 너무 완벽한 캐릭터라 세상 제일로 오글거릴 것 같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다. 이왕이면 원서로.





“이 세상에 나쁜 사람 같은 건 없어요. 우리 모두 가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냥 헤엄치는 거야. 그냥 계속 헤엄쳐, 계속, 계속.”



나는 딸의 이마에 입 맞추고 약속했다. “여기에서 멈춰야 해. 나랑 네가 끝내는 거야. 우리가 끝내야 해.” - <우리가 끝이야> 중에서

It Ends with Us

콜린 후버 (지은이) 지음
Thorndike Press Large Print 펴냄

👍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추천!
2022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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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anna5nme

  • 안나님의 작별인사 게시물 이미지
김영하가 9년만에 내는 장편소설이 풀린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기대했다. 공개되는 날 바로 읽고 싶어서 읽던 책을 서둘러 후다닥 읽어버렸을 정도. 일부러 책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첫 장을 읽고나서도 이게 어떤 내용으로 흘러가게 될지 짐작도 못 했다.

얼마전 읽었던 김동식의 ‘아웃팅’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대신 훨씬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이고 잔잔하고 길게 풀어진 느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이 사라지자 끝내 인공지능도 사라지게 되는 내용이다.

나는 sci-fi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를 떠올렸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가 바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아일랜드’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바깥 세상이 오염되어 환상의 섬으로 가기 전의 격리시설에 발탁되어 온 선택된 사람들이라 믿고 지냈지만 알고보니 복제인간을 보관하는 시설이었다는 것. 이곳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간다는 건, 복제인간의 주인이 장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소설 ‘작별인사’ 속 선이가 스칼렛요한슨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평양 스칼렛 요한슨.

스토리 전개보다는 이 책에 몇 번이고 언급되는 오즈의 마법사와 빨간머리 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신선하지 않은 내용에 신선한 결말이어서일까, 흥미롭게 읽었다. 신기할 정도로 혼자 잘 놀아준 아기를 앞에 두고 읽어서 더 재밌었을수도.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작별인사

김영하 (지은이) 지음
복복서가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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