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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간서치'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다.
이덕무를 비롯한 그의 벗인 박제가, 유득공은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 살면서 진한 교우관계를 맺고 검서관으로 규장각의 실무를 맡아 조선 학문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들의 벗인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백동수와 그의 스승인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의 이야기들이다.
조선시대 서자라는 신분은 후손들에게 서러운 핏줄을 이어가게 할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그들의 원망과 한숨 그리고 눈물이 서자의 뇌리 속에 벌겋게 탈색되어 덕지덕지 쌓이고 쌓여 자식들에게 평생 한으로 남겨질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조선 최고의 무사 백동수는 양반 서자 출신으로 신분의 제약으로 차별 대우를 받아야만 했고 봉건적 신분의 반대를 위해 선진적 실학사상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 네 사람 모두 서자 출신이며 공교롭게 백탑 아래 친구이자 연암 박지원 선생 아래 교우하였다는 게 이채롭다
또한 이들은 양반이란 계급사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자기 대로부터 눈물과 한숨으로 이어지는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단단히 얽어매어 놓은 사슬 한 겹이라도 풀어놓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계를 맹세했지만 결국 그 한을 풀지 못하고 가슴속에 불길만 이글거렸다.
이기적인 양반의 핏줄, 운명을 쥐고 흔드는 시대의 아픔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가시인 중 이덕무·박제가·유득공은 서얼 출신인데 반하여 이서구는 유일한 적출이었고, 벼슬도 순탄하게 올라갔다.
이덕무와 이서구가 서자와 적자와의 불편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책을 통한 가치관의 합일이었다. 서로 책에 취하고 바람결에 바삭거리는 책장 소리에도, 책을 읽어 온 흔적마저도 둘의 애정은 닮아 있었다.
이후 둘은 문턱이 닳도록 서로의 집을 넘나들면서 책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맞혀보고 생각이 다른 경우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 헤치듯 미로 속에서 서로의 손때가 묻어날 정도로 책에 대해 깊은 대화를 이어나갔으며 벗으로서 거리낌 없는 우정을 나누었다.
이덕무의 스승 '홍대용'은 그 시대에도 세상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며 둥근 구체는 그 어느 누구, 그 어떤 자리에 서 있어도 지구의 중심에 서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는 스스로가 중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 살아가야 할 이유라는 것이다. 그 순간 내 가슴에는 큰 물결이 꿈틀거렸고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한 통찰의 벽을 뛰어넘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박지원 선생의 호는 '연암'이다. 연암이란 황해도 금천 골짜기에 있는 제비 바위를 뜻한다. 박지원은 이덕무와 백동수와 함께 유람하면서 속이 다 비칠 정도로 맑은 시냇물 위에 검푸른 절벽이 둘러서 있고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바위 위에 제비가 둥지를 틀고 있어 박지원은 언젠가 그곳에 내려가 살리라 마음먹고 그때부터 '호'를 연암이라 하였다.
연암 선생의 관심은 내 나라 내 백성이 힘을 길러 풍요롭게 살아가는 현실적인 것이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일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중국에 다녀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손꼽아 말하면 무엇이냐고. 다들 만리장성이나 중국 황제의 궁궐, 드넓은 요동 들판 이런 것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연암 박지원 선생은 '깨어진 기와 조각과 냄새나는 똥거름이 가장 볼만하더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젊은 학자 박제가는 중국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나라와 백성을 위해 '북학의'라는 책으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편안함을 누리고자 하는 사대부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유득공은 잃어버린 우리 영토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드넓은 대륙을 누비며 '발해 셋이면 호랑이도 때려 잡는다'는 그 핏줄이 흐르고 있을 씩씩한 기상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서적을 뒤져 발해의 흔적 찾기에 일생을 바쳤다.
드디어 일생의 업적인 '발해고'는 1784년에 완성되었다.
이덕무는 조선 정조 때의 문인으로 서자 출신으로 태어나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박학다식하고 시와 문장에 능하였고 원각사지 십층 석탑을 중심으로 백탑파로 불리며 규장각 초대 검서관으로 시가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이들 서자의 삶은 사람으로 태어나 쓰일 데가 없어 비참함을 느낀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세상을 조금도 바꿔놓지 못하고 고작 하는 일은 종이를 묶어 책을 만들거나 밀랍으로 윤회매를 만드는 것뿐 살아가는데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은 일을 한다며 한탄하고 있다.
책이란 시간을 나눈다는 것이다.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지 않더라도 옛 선인들로부터 그들의 시간을 나누어 갖는다는 의미이다.
옛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을 오롯이 내 가슴속에 옮겨와 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산과 들, 한 맺힌 숨소리 하나 그만큼의 시간을 더해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선인들로부터 물려받은 시간만큼 나는 내 아이, 내 후손에게 조금이라도 값진 빛나는 시간을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저 아이들이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내 선조와 나 그리고 후손들과 함께하는 벗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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