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엄마곰님의 프로필 이미지

책읽는엄마곰

@k_jin

+ 팔로우
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의 표지 이미지

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

슛뚜 지음
상상출판 펴냄


어디를 여행하는 가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구와 여행을 하는 가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나라를 거닐지라도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며칠을 여행하면 괴로운 나날이 되고 말 것이고, 그저 그런 평범한 동네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즐거운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p.281)

사실 타인의 여행기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고, 언젠가의 리뷰에도 기록했던 것 같다. 특히나 원래도 편안한 삶을 타고난 이들이, 편안한 여행을 하며 기록한 이야기는 더욱이.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워낙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제목이 내 마음을 끌었다. 나야 뭐, 원래도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녀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실은 나름 책 편식도 하는데, 이 책은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끌었다. 나도 언제인가는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하며, 내가 걷고 싶을 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쉬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첫 장을 펼쳤다.



-니스의 바다는 정말 파란색 그 자체였다. 세상 모든 파란색은 이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57)

-그들과 말을 섞지도 않았고 나는 사방에서 왕성하게 들려오는 문장의 단 한 부분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탈리아 인들의 삶에 퐁당 뛰어든 것 같은 기분이라 좋았다. (p.82)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p.187)

담담하게 적어 내린 문장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울컥했다. 나도 모르게 그리워했던 걸까. 나의 젊은 시절, 내가 아직 나였던 시절, 내가 혼자였던 시절.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서 자꾸만 울컥했다. 내가 이 책에서 만난 것은 어느 나라의 낯선 풍경이라기보다는, 내가 나였던 시절인 것 같았다. 걷고 싶으면 걷고, 먹고 싶으면 먹고, 가만히 앉아있고 싶으면 가만히 앉아있던 시절. 분명 지금의 나도 사랑하고 지금의 나도 행복한데, 나는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때의 내가 그리웠다. 그래서 많이 울었고, 많이 생각했고, 많이 그리웠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그 모든 것들을 보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이 내가 영국에서 생일을 보내기로 결심한 이유였으니까. (p.176)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 마음이 너를 챙기고 있다. 항상. 내가 겉으로는 툭툭 거리지만, 항상 마음은 안 그렇다는 것만 알아라. 그것만 알면 된다.” 나는 언제나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늘 몰라줬다. 아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 마음으로는 늘 대답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고맙다고, 나도 그렇다고. 그때 내가 “네, 알아요” 하고 대답했다면 뭔가 달라 졌을까.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나버린 순간을 어찌할 수 없다. 후회한다고 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지나버린 순간이겠지.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더 마음이 아팠다. 틈만 나면 걸었다니. 낯선 일상을 찾아 걸었다니. 나이를 먹을수록, 낯선 것들을 무서워한다. 낯선 감정이, 낯선 순간이, 낯선 공간이 두려워서 점점 일상 속에 숨어버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틈을 내는 게 어려워서 진짜 걸어야 할 순간에 진짜 쉬어야 할 순간에 걷지도 쉬지도 못하는 바보가 되어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 순간임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멍청이가 되어간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내가 더 그립다. 마음 놓고 쉴 수 있었던 내가, 발이 닿는 대로 걸을 수 있던 내가, 마음이 가는 대로 할 수 있던 내가. 이 책에서 내가 만난 것은 저자도 아니고, 저자의 여행지도 아니고 오롯이 나였다. 이 책은 내게 있어서 그리운 시절의 나였다.

그리고, 나도 저자처럼- 그게 너무나도 좋았다. (p.295)



#책속구절 #책속의한줄 #책스타그램 #책으로소통해요 #북스타그램 #육아소통 #책속은놀이터 #책읽는엄마곰 #책읽는아기곰 #책읽는엄마곰책읽는아기곰 #낯선일상을찾아틈만나면걸었다 #슛뚜 #상상출판 #여행 #일상 #여행기 #리뷰 #독후감 #독서감상문 #책읽기 #독서 #도서리뷰
2020년 1월 16일
0

책읽는엄마곰님의 다른 게시물

책읽는엄마곰님의 프로필 이미지

책읽는엄마곰

@k_jin

사실 캐드펠수사시리즈에서 제일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책을 고르라면 나는 바로 이 『귀신 들린 아이』였다. 일단 제목부터 다소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아이들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들이 조심스러운 편이기에 과연 이 안에는 무슨 내용이 담겼으려나 걱정부터 되었다.

그런데! 맙소사! 『귀신 들린 아이』에는 엄청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무려 20권이나 되는 케드펠 수사시리즈가 어떻게 모조리 재미있을 수 있나 생각하면서도, 매번 읽을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거야 도대체! 아무튼 이번 『귀신 들린 아이』는 견습수도생인 메리엇이 몽유병같은 증세를 보임과 동시에 사신으로 프랑스에 간 수도사 하나가 실종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오래 소설을 읽어온 짬으로 당연히 두 사건이 연관이 있겠지 생각은 했지만 과연 이것을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했는데, 이야기를 어찌나 유기적으로 연결짓는지 놀라움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귀신 들린 아이』에서는 진정한 답이 등장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우리가 보지 못하고 사는 진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귀신 들린 아이』를 리뷰하는 사이, 어느새 읽을 책이 1권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 권은 지금 읽고 있다) 남은 두가지는 또 얼마나 나를 긴장하게 만들고 빠져들게 만들지 고민과 기대가 동시에 든다.

캐드펠수사시리즈는 정말 강력추천하고 싶은 추리소설시리즈! 특히 중세를 좋아한다면 일단 무조건 시작해보길 추천드린다.

귀신 들린 아이

엘리스 피터스 지음
북하우스 펴냄

5시간 전
0
책읽는엄마곰님의 프로필 이미지

책읽는엄마곰

@k_jin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때때로 우리는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하루를 만나기도 하고, 운없는 일들만 줄줄이 일어나는 하루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할 그림책 『오늘 왜 이래?』의 주인공 '곰'은 표지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 『오늘 왜 이래?』가 저절로 떠오르는 하루를 보냈다고 해요.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를 찾다가 나무 가시가 손에 박히고, 길을 지나가다가 넘어지는 나무에 머리를 맞기도 하죠. 그뿐인가요? 겨우 구한 장작을 낑낑 끌고 가는데 비가 와서 쫄딱 젖어버려요. 눈물을 꾹 참고 친구에게 가려는데 그만, 흙탕물에 빠지기까지 합니다.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낸 탓인지, 친구 개구리를 만나자마자 울음이 터집니다. 원래 하루종일 잘 견뎌내다가도 내 편인 사람을 만나면 눈물이 먼저 나는 법이잖아요? 덩치는 산만하지만, 마음은 여린 우리의 곰도 똑같았습니다. 지혜로운 친구를 만나자마자 서러움이 폭발해버렸어요. “오늘은 정말 엉망진창이야.” 하면서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어요.

개구리는 곰에게 어떤 위로를 해주었을까요? 사실 개구리는 특별한 위로를 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가시를 쑥 뽑아주며 생각보다 훨씬 작은 조각이었음을 말해주었어요. 혹을 유심히 살펴보며 생각보다 혹시 크지 않다고 말해주었어요. 웅덩이도 생각보다 깊지 않음을 알려주며 곰을 씻겨주었고, 땔나무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죠. 마침내 곰은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해요. 그리고 말하죠. “있잖아, 개구리야. 오늘 그렇게까지 엉망진창인 날은 아니었어.”라고 말입니다.

MBTI에 중독된 우리들은 어쩌면 개구리의 위로법이 “너 T야?”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SNS에 따르면 좋은 위로는 “너 정말 속상했겠다”로 시작하는 F의 위로니까요. 하지만 오늘 그림책 『오늘 왜 이래?』를 보면서, 개구리의 방식이 때때로 더 좋은 효과를 주지 않나 생각했어요. 감정적으로 지친 사람들은 사실 내가 처한 상황들을 더욱 나쁘게 생각하곤 하잖아요. 각기 다른 일들을 연쇄적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나에게만'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래서 더많이 힘들어하고 슬퍼하며 '감정의 늪'에 빠져버립니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 늪에서 건져줘도, 결국 다시 늪으로 빠져버리고, 건져주던 친구들까지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보다 '이겨낼 힘'이 아니었을까요? 개구리는 곰에게 그런 힘을 준 게 아닐까요? 곰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볼 수 있는 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감정을 분리하는 힘. 그리고 상황을 해결하는 힘. 마침내 털고 일어나는 힘.

오늘 아이와 그림책, 『오늘 왜 이래?』를 읽으며 진짜 공감에 대해, 진짜 응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아이도 살다보면 '엉망진창'이라 느껴지는 날을 만나게 되겠죠. 물론 그럴때 엄마는 최선을 다해 공감하고 응원을 하겠지만, 우리 아이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에서 빠르게 헤어나오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잘 가르쳐주어야겠다고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에 나쁜 일들이 많았나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디, 그 우울감을 빠르게 떨쳐내고 좋은 밤을 맞이하길 바라요. 당신의 하루가 엉망진창으로 마무리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진흙탕에서 건져내길 바라며. 또 내일의 당신이 오늘보다 단단하고 행복하길 바라며. 굿밤!

오늘 왜 이래?

덩컨 비디 지음
국민서관 펴냄

3일 전
0
책읽는엄마곰님의 프로필 이미지

책읽는엄마곰

@k_jin

그림책 거장, 앤서니 브라운의 새 책,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를 만났다. 워낙 유명한 작가님이기도 하고, 거의 모든 책들이 감동적이었던 터라 기대가 컸는데, 그 큰 기대보다 훨씬 많은 감동과 깨달음을 안겨주는 책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n년 전에 알았더라면”이 저절로 떠오르는 그림책, 그래서 아이가 가슴 속에 깊이 품어놓고 살길 바라는 책,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를 소개한다.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표지도 아주 큰 고릴라와 아주 작은 고릴라가 어우러져있다. 아이와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이는 반대의 존재들이 어울러져 살아가는 이야기일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속의 이야기는 우리의 예상과 같고도 달랐다.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안에는 우리가 모두 어린시절을 보냈듯, 모두 나이를 먹는다는 이야기도 들어있었고, 슬픔이 몰아치는 날도 행복해서 웃음이 새어 나오는 날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없이 마음이 무거운 날도, 가벼이 놓아줄 수 있는 날도 있음을 읽으며 역시 그림책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 아이는 텅빈 그림책에 혼자 덩그러니 앉은 작은 고릴라를 보며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니, 뒷장에서 수많은 고릴라 안에 함께 있는 모습에 “안심이 된다”고 표현을 해 엄마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앤서니 브라운의 새 이야기,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에는 이렇게 대비되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다룬 장면이 이어졌는데, 두어줄의 문장이 세상을 담고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

아이와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를 읽은 날, 감정의 크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의 세상이 아직 작기에 더 크게 기뻐하고 더 크게 슬퍼할 수 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래서 어린이들은 더 많이 기쁘고 더 많이 즐겁구나. 그래서 힘든 것도 속상한 것도 빨리 이길 수 있어”라는 아이의 말에 오히려 내가 배웠다. 물러터진 엄마를 대신해 그림책들이 우리 아이를 이렇게 단단하게 키워주고 있음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의 숨은 재미. 앤서니 브라운의 다른 책들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찾아볼 것. 우리 아이는 숨은 그림찾기를 하듯 즐거워하며 일러스트를 살폈다. 또 다양한 표정을 따라하기도 했고. 그런 아이를 보며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는 우리 아이처럼 초등학생에게도, 글씨를 모르는 더 어린아이에게도, 나처럼 어른에게도 특별한 감상을 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릴라들의 표정을 살펴보며 어떤 감정인지를 맞춰보는 것에서부터, 숨은 '등장동물'찾기, 감정의 흐름과 크기를 이해하기 등 다양한 각도로 만나기 좋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함에 서툰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도 좋을 듯 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역시 앤서니 브라운!”이라는 생각이 가득 들었던 그림책,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였다.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 지음
웅진주니어 펴냄

3일 전
0

책읽는엄마곰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