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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외 2명 지음
샘터사 펴냄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내가 살아가면서 몰입의 순간을 가장 크게 느끼는 시간은 책 읽기도 아닌 달리고 수영하고 자전거를 타며 온몸 근육세포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뻐근한 고통을 즐기는 때이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우울이 눈가에 주렁주렁 매달릴
때 운동화를 신고 런러스 하이가 올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달리면 기분은 점점 좋아지고 부정적인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몰입'이라 부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추구하고 성취감을 높이는 생활을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 삶이라 할 수 있다.
몰입할수록 일의 집중도가 높아지는 만큼 달리기도 몰입해서 달리면 좀 더 기록도 향상할 수 있으며 우리의 의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철인3종 경기를 즐기는 나로서는 저자가 말한 '몰입'에 대한 느낌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실재로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달릴 때 95km 지점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도저히 두 발로 뛰어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의식의 몰입, 즉 정신력으로 마지막 결승선에 도달했을 때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한 순간이었다.
철인3종 경기에서도 장장 226km(수영3.8km, 자전거180.2km, 달리기42.195km)를 연이어 달리면서 고통의 절벽에서 초인의 힘이 바로 '몰입'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다.
내 발이 단단한 아스팔트 지면과 부딪히는 소리와 먼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바람결에 실려와 맨살에 부딪히는 소리가 끝없는 고통 속에서 희열을 느끼게 하고 깃발이 휘날리는 결승점으로 들어가는 순간 무아지경에 빠지고 만다.
마지막 비축된 내 몸 안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마지막 전력 질주 후 털썩 주저앉아 아직 진정되지 않은 호흡을 가다듬을 때 느끼는 감정은 온 세상을 품에 안은 듯한 무공의 시간이 된다.
내가 경험한 '몰입'의 순간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 되어 시간의 개념이 상실된 것 같이 수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몇 분 지나지 않은 아주 짧은 시간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몸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 상태로 '몇 분 달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골인이야'하면서 그토록 빨리 시간이 지나갔음에 나 자신도 놀라고 만다.
그 시간만큼은 힘들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가장 행복한 정지된 시간처럼 시간의 왜곡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책의 재미에 푹 빠져있거나 게임에 빠져 있을 때 공통적인 생각은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
반대로 심심하고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혹은 마라톤 경기에서 집중력이 저하되고 자의식이 상실된 몸이 버티지 못할 때 시간은 마치 억겁의 세월처럼 더디게만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지옥 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빌면서 한숨만 푹푹 쉬게 되는 경험을 많이 해보았을 것이다.
걸음은 늦어지고 골인 점은 아직 보이지도 않은데 시계는 계속 들여다보면서 심리적으로 파괴된 왜곡의 시간을 우리는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서 '몰입'의 순간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달리면서 뭔가 울컥한 '벅찬 감동의 순간'이라 말하고 싶다.
그것은 이전보다 높은 속도로 달렸을 때 일수도 있고 달리는 내내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었을 때 일수도, 앞선 주자를 한 명 한 명 추월하면서 마지막 경쟁자까지 추월하며 완주했을 때 일수도 있다.
사람마다 '몰입'의 순간이 다르겠지만 평소에 달리면서 느끼지 못했던 가슴속에 꿈틀거리는 벅찬 감동의 순간이 올 때 나는 달리기의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낀다.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달리며 몰입했던 순간보다 더 행복한 기억은 거의 없다. 열정을 불태워서 목표한 바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꼭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몰입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기에서의 배움은 과도한 욕심이 부상을 부르고 결국 그 부상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갉아먹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달림을 통해서 그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풀꽃, 나무, 돌멩이, 벌레들과 친해졌고 온몸에 땀이 범벅이 되면서도 서늘한 바람 한 줌에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달리기야말로 나에게 세상의 눈 뜸을 가르쳐 준 스승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시인 '마야 안젤루'는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 가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달리기 위해 호흡하는 반복적인 행위들, 격한 숨을 쉬기 위해 가슴을 활짝 열어젖힌 행위를 보면서 인생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달리며 숨 막히게 몰입한 순간, 그것이 꼭 거창한 아름다움일 필요는 없다.
산허리에서 지는 저녁노을과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온몸을 적시며 여유롭게 언덕을 오르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면 적어도 나에겐 잘 살았다는 증거 아닌가 싶다.
이 한 몸 뭘 해도 숨 쉬고 살아갈 순 있지만 영혼이 죽은 채로는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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