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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라로 서로의 음모를 빗었다
다리에 드리운 밤의 가지는 점점 길어졌다
보푸라기처럼 닿으면 닿을수록 망가지는 우리
언제나처럼
사랑한다는 말만 남고 우리는 없었다
- ‘별거’, 이수호
밤마다 뒤척이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 집 침대는 외롭다
거대한 캔버스
죽은 맨드라미와 모빌
부싯돌처럼
서로의 머리가 깨지는 줄도 모르고
낡은 성냥갑에 갇혀 있는
자작나무
불길한 우리는 침묵했다
숲은 겨우내 거울 안에서
우거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야광별
순한 처마에 흐트러지는 빗방울
마주 본 등은 익숙하고 무서웠다
나는
쓸모없는 그림이 되었다
- ‘한때의 섬’, 이소호
나는 나 같은 너에 대해 말한다 당신이 파 놓은 구멍에다 들어가 보는 고양이처럼 너라는 나에 대해 말한다 모자란 2월의 날들을 걸어 놓은 옷걸이 푹 삶은 하얀 양말을 신고 건너간 수화기 너머에는 내가 버려 놓은 말들이 떨고 있다 먼지 위에 쌓아 올린 일기처럼 문턱을 넘지 못한 발가락처럼 나는 나보다 멀리 가 떨고 있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있다
나는 네 침대에 놓인 긴 머리카락보다 말이 없다 말을 뒤집어 우리는 뒷면을 응시한다 하루의 뒷면, 칫솔의 뒷면, 크랜베리 빵의 뒷면, 미키마우스 티셔츠의 뒷면, 그리고 섬의 뒷면 당신은 잘린 손톱처럼 외롭다 섬, 섬 나는 스위치를 내리고 불 꺼진 등대를 생각한다
- ‘혜화’, 이소호
너는 쓴다
아름드리나무 사각사각 부서지는 햇볕 속에
당신은 나 홀로 종이 위를 걷게 하고. 거기 섬, 숲, 나무, 다리 없는 의자, 아귀가 안 맞는 조개껍데기, 무리를 짓다 홀로 툭 떨어져 버린 새 한 마리를
쓴다 페이지의 끝에서 너는
마침표 한 줌을 사고
다시
나는 적힌다
만남이 커피로 맥주로 침대로
너무나 익숙해진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원래 인물이란 입체적인 거잖아
변하는 게 뭐가 나빠?
나는 따옴표를 열고
너의 문장으로만 울었다
“좋은 사람. 좋은 사람. 그럼에도 좋은 사람.”
바닥에 널브러진 뻣뻣한 빨래들처럼
아무렇게나 구겨지고 흩어지다 마구잡이로 입혀진다
너의 알몸 그대로 나는
슬픔이 리듬을 잃어 가는 일을 묵묵히 바라보며
서로의 눈동자 속을 잠영하는
이제 우린
인사는 가끔 하고 안부는 영영 모르는 세계로 간다
이 빼기 일은 영
아무것도 아닌 채로
적힌다. 소호야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 색 색깔로 칠해 봐. 밀가루 반죽처럼 온종일 치대다 어거지로 뚝뚝 떨어졌던 시간을, 그려 봐. 멀고도 먼 눈을, 손을, 그보다 더 멀리멀리 놓여질 등을, 상상해 봐. 검은 크레파스로 덧칠한 우리 둘만의 밤을. 잘 봐 이제 거길 클립으로 파서 단 하나뿐인 세계를 만들자
어때 이 정도면 더는 슬프지 않지?
우리는 숯처럼 새까만 숲을 걸었다
네 뒤를 졸졸 따르며 가끔
내가 실수로
클립으로
도려낸 너의 마음에
가슴을 대었다
떼 본다
춥다
- ‘사라진 사람과 사라지지 않은 숲 혹은 그 반대’, 이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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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fahr님의 인생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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