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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어요
딴말이지만 표지가 정말 예쁘다.
달님을 보며 "제 소원은요-"라며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지만,
허물이 끊이 없이 생기는 피부병을 소재로 한 재난 소설이다.
그래서 읭?하며 읽어봤는데,
영물인 '롱롱'에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보며 귀여운 부분도 있어서
지금 보니 표지랑 내용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출판사 직원분들이 생각이 없는 건 아닐터이니..ㅎ)
책을 읽으며 정유정 작가의 <28>이 생각났을 정도로
재난 경보가 삐뽀삐뽀 울리는 것 같은 이 소설은
유독 특정 지역(소설에서는 D구역이라 불리는)에서 많이 발병하는 피부병(허물)에 대해 다룬다.
"피부 각화증이 심해져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몸을 뒤덮는 피부병은
이 도시의 풍토병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각질세포 형성에 관여하는 구조단백질이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티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유독 티셀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고 증세가 심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12p)
D구역에서만 유달리 많이 발병되는 피부병의 증상은
온몸을 뒤덮을 정도로 허물이 생기고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사람들은 이 허물을 없애준다는 신단백질 'T-프로틴'을 챙겨먹고 관리하지만,
개인적으로 치료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구역 안에 있는 방역센터로 가서 말끔히 치료받길 원한다.
방역센터는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을 환자들을 모집하고,
환자들은 자소서 마냥 신청서를 써 낸다.
근데 치료 받는 것도 잠시 뿐 방역센터에서 나와 생활하다보면 다시 허물이 생긴다.
생기면 방역센터 - 나와서 생활 - 허물 생김
악순환이 반복됨.
"세상의 허물을 벗기는 전설 속의 뱀,
롱롱이 나왔다는 것이다." (13p)
공포스러운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희망을 찾기 위해
전설 같은 걸 소환한다.
D구역에서도 전설은 존재하는데,
거대한 뱀인 롱롱이 그 주인공이다.
뱀은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데,
롱롱이 허물을 벗을 때 주변에 있으면 다시는 피부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허물은 아무리 감춰도 스스로를 드러냈다." (18p)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허물이 뜻하는 게 무엇일 지 생각해봤다.
사람마다 존재하는 치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허물은 사람마다 형태가 달랐고,
감추기에 급급한 요소다.
그런 점에서 허물은 치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방역버스에 올랐다.
죽은 사람들은 운이 나빴을 뿐이고,
자신은 그렇게까지 운이 나쁘지 않기만을 바랐다." (33p)
방역센터로 가는 사람들이 백퍼센트 살아서 돌아오는 건 아니다.
거기서 죽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생체 정보를 소유한 사람,
공 박사는 어떤 사람일까?" (51p)
방역센터 입성에 성공한 주인공은 사설 동물원의 파충류 사육사였는데,
센터에서 김, 후리, 척을 만나게 되고,
센터 안에서 공공연하게 임상실험이 행해진다는 걸 알게 된다.
"난 방역 센터의 천재 연구원들이 해결 못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돼.
손 하나만 까딱해도 일일이 규제를 걸어 까다롭게 굴면서
백신 하나를 개발 못 해 쩔쩔매는 걸 보면 이상하지 않아?" (56P)
"임상시험 병동으로 끌려가는 거야." (57p)
"방금 전 복도에서 본 남자는 정말 임상시험 병동으로 끌려간 것일까.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있는 걸까." (61p)
"예로부터,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허물이 죄다 벗겨진다고 했거든." (61p)
센터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아가며 치료를 받던 주인공들은
전설의 동물 롱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 중 후리는 밖에 있을 때 버려진 궁에서
롱롱처럼 보이는 커다란 뱀을 봤다고 하면서
센터에서 나가면 다시 만나 롱롱을 찾아나서자고 넷은 약속한다.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71p)
버려진 궁에서 롱롱과 맞닥뜨린 주인공들은
그 중 김이 운영하는 타이어 가게에 롱롱의 은신처를 마련해준다.
"방역 센터가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말은,
말 그대로 언제까지나 개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개발을 멈춰도 안 되고, 개발에 성공해서도 안 되는 것이죠.
이 도시의 생산 동력은 시민들이 허물을 입고,
허물을 벗는 데서 나옵니다.
백신이 개발되면 이 도시는 생산 동력을 잃게 되는 겁니다." (153p)
롱롱의 전설을 믿으며
롱롱이 허물을 벗기만을 기다리면서
주인공들은 기업 도시가 된 D구역의 경제 활동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 뱀이 진짜 롱롱인지,
아니면 그저 거대한 뱀에 지나지 않는지,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겁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뱀의 몫이 아니라 사람의 몫입니다." (158p)
사람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사람들이 품는 공포라는 감정을 이용해
이 도시는 돌아간다.
주인공들은 도시의 통제자들에게 반기를 들고
허물을 벗을 방법들을 생각해낸다.
"원래 라이벌이 있으면 시장의 규모가 커지지 마련입니다." (162p)
"롱롱프로틴은 '소원'을 콘셉트로 프로모션을 진행할 겁니다." (162p)
방역센터 임상실험에 끌려갔던 척을 중심으로
주인공을은 대화를 나눠본 결과
사람들이 챙겨먹는 'T-프로틴'의 목적이 허물 제거가 아닌 허물 생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험 영업이란 게 말입니다.
실은 불안을 퍼뜨리는 일입니다." (179p)
책을 읽다보면 씁쓸한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민중들은 철저히 통제되어서 바보가 되는 것 같고,
서로 살기 위해 서로의 아픔을 건드려 돈을 버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 형 말이, 방역 버스 배기가스 배출 장치가 개조된 거 같다고 하더라고." (190p)
"다른 걸 배출한 거야. 배기가스에 섞어서." (191p)
하나 둘씩 D구역이 계획도시란 증거가 나온다.
구역 안에 방역을 목적으로 돌아다니는 버스가
허물을 생기게 하는 티셀 바이러스를 배출하고 다닌다고 한다.
"허물을 벗은 뒤엔 다시 허물이 생겨나는 게야.
허물이 생기고, 허물을 벗고, 또다시 허물이 생기는 건 타고난 숙명이지." (201p)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믿음은 저절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스스로 택하는 게야." (201p)
"T-프로틴이 수상해." (205p)
"노파가 허물을 벗지 못하는 건 T-프로틴 떄문인지도 몰라.
방역 센터도, 프로틴도 없었던 시절,
모친은 스스로 허물을 벗었다고 했어." (205p)
"신단백질이 티셀 바이러스와 반응해 허물을 밀착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결론입니다.
허물의 공포를 이용해 시민들에게 T-프로틴 복용을 강요하고,
허물을 벗지 못하게 한 겁니다." (217p)
"티셀 바이러스가 아님 뭐겠어?
배출 팬을 강제로 작동시켜 티셀 바이러스를 함께 배출시키는 원리일거야.
그 무렵 허물이 D구역 전체에 퍼진 게 우연이겠냐고." (217p)
"티셀 바이러스를 퍼뜨려 허물이 생기게 하고,
허물이 저절로 벗겨지는 걸 막기 위해 신단백질을 섞은 T-프로틴을 유통시켰군요.
방역 센터만이 허물을 벗길 수 있도록." (217p)
"감옥을 짓기 전 열쇠를 미리 마련해뒀다는 말은 사실일 겁니다." (229p)
주인공들이 도시의 음모를 하나 둘씩 깨우치지만,
포획한 롱롱은 허물을 벗지 못한 채 끙끙 앓고만 있었다.
"완치율 100% 피부암 치료제 개발을 제약 회사에 제안한 건 나야.
제약 회사는 티셀 바이러스 백신을 보급하자고 했지만 내가 반대했네.
대신 허물을 키워 통제하는 방식을 제안했지.
애초부터 이 도시는 거대한 표본 집단으로 설계된 거라네." (275p)
끙끙 앓고 있는 롱롱을 방역센터가 잡아가고,
거기서 공 박사라는 방역센터의 중심 인물과 대적하는 주인공은
실마리를 듣게 된다.
제약 회사의 이익을 위해 도시는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이용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롱롱과 기적적으로 같이 탈출하는데,
롱롱은 여전히 허물을 벗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롱롱은 허물을 벗다 만 상태였는데,
그 때 주인공은 롱롱을 신으로 받들며 기도드리던, 사라진 노파를 생각해낸다.
"밤늦게까지 롱롱 앞에서 소원을 빌던 노파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허물을 벗으러 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엄마처럼 롱롱의 몸속으로 헤엄쳐 들어간 것일까?" (292p)
"사람 몸속 0.9%의 염도! 삼투압 현상!" (292p)
"뱀이 장독대 근처에서 허물을 벗는 이유는 삼투압 현상 때문이야.
뱀은 허물을 벗을 때가 되면 본능적으로 염분을 찾지." (292p)
"사람의 체액이 몸속에 퍼지자 롱롱의 허물이 헐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뱀이 허물을 벗기 위해 필요한 염도,
살아 있는 것들의 핏속에 있는 0.9%의 염도가 롱롱의 허물을 벗긴 것이다.
뱀의 몸속 메커니즘에 변화를 일으킨 물질은 이것이었다.
완전한 탈피를 하기엔 노파의 체액이 모자라서." (293p)
롱롱의 몸에 타고 있던 주인공은 사라진 노파가
롱롱의 몸 속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허물을 벗기려면, 롱롱이 허물을 벗으려면,
자신이 희생해야함을 느끼며 롱롱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
"날 삼켜.
핏속 소금이 녹아들 때까지.
그래서 허물이 벗겨질 때까지.
내 허물이, 세상의 모든 허물이 벗겨질 때까지." (294p)
그리고 사람들은 허물을 벗는다.
"허물을 벗은 얼굴엔 또 다른 허물이 드리워진 것처럼 보였다." (298p)
"도시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것만 있으면 다시.." (298p)
철저히 구성원들을 이용하고 통제하는 폐쇄적인 곳이
소설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곳에서 통제자들은 사람들의 어두운 부분을 건드리고 장악하려 든다.
그리고 그들과 싸우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쫓겨난 통제자들은 어딘가에 자신만의 구역을 또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찾을 테고 또 통제하고, 또 쫓겨나고,
반복되겠지.
역사는 전진과 후퇴의 반복이다.
소설 속 사람들의 고통의 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영화 <연가시>가 생각났다.
그리고 철저히 통제된다는 점에서
얼마 전에 읽은 책 <밀레니얼 칠드런>이 생각났다.
같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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