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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우물, 쩝쩝, 꼴깍. 오늘도 먹는 중이다. 내 입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최대 관심사이던 날, 물 한 모금 넣기 힘들 정도여도 꾸역꾸역, 살기 위해 넣었던 날, 그저 오늘처럼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 맞춰 수저를 드는 날이 내게 존재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내 곁에 있는 그들은 '음식'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데 음식은 내가 먹고 싶어 다가가면 자신을 온전히 내어준다. 내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 덕에 난 그 순간의 감정도 함께 담는다. 그 음식에.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평생을 간다. 이 정도로만 음식을 바라본 나였다. 맛있는 시를 통해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기 전까지는.
오랜 세월, 음식을 바라본 그들의 시각이 담겨있었다. 마음을 울리는, 입가에 미소를, 눈가에 촉촉함을 선물해준 시들 옆에는 따스함이 퍼지는 그림들이 함께했다.
EBS FM <시 콘서트>의 방송 원고를 쓰실 때부터 매일 시를 읽음으로 하루를 여셨다는 정진아 작가님의 손길을 타고 온 시들과 작가님의 마음 이야기로부터 많은 감정들을 선물 받았다. 임상희 작가님의 강아지들이 자주 등장하는 그림 덕에 한 스푼 더해진 여운을 받으며 한 글자씩 읽어내려간 시집, 맛있는 시였다.
맛있는 시에 수록된 시 중 몇 편만 이 감상문에 담아놓으려 한다. 모든 작품이 감사했던 존재지만 다 다룰 수는 없기에 몇 편만. 그전에 임상희 작가님의 말씀으로 열렸던 맛있는 시처럼 이 글도 그렇기를.
생굴을 넣어 미역국을 끓이고 조기가 구워지는 동안 불고기를 볶아 채 썬 대파를 올릴게요. 새로 꺼낸 배추김치를 먹기 좋게 썰고 달달 볶은 묵은지에 데친 두부 몇 조각도 곁들이겠습니다. 자, 고슬고슬 갓 지은 밥 한 그릇 내어놓습니다. 당신을 위한 '시 밥상'이에요. 맛있게 드세요. 마음대로 아무 때나 꺼내 읽으면 됩니다. (중략) 여러 편을 한 번에 읽어도 배탈이 나지 않아요. 통째로 다 먹어도 안전합니다.
- 맛있는 시 _ 6쪽, 작가의 말 :: 따뜻할 때 드세요, 당신을 위한 맛있는 시 -
작가의 말로 데워진 마음을 가지고 통째로 먹어도 안전한 시들을 누리러 가 보시죠~ 맛있는 시는 크게 4장으로 분류되어있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며 위로를 건네주는 위로의 맛,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떠오르는 사랑의 맛,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던, 슬퍼하던 파트인 간장 맛, 소금 맛, 설탕 맛, 된장 맛, 고추장 맛.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재료들, 그 기본의 맛이자 인생의 맛이. 마지막으로 가장 소중한 우리 엄마의 맛.
[숟가락은 숟가락이지]에서는 금수저, 은 수저, 흙 수저 소리에 짧은 물음표를 던지시곤 숟가락 본연의 의미를 언급해주시곤 시집오실 때 가져오신 꽃 숟가락으로 밥 한 숟가락 푹 떠서, 김치를 올려 드시는 할머님을 뵐 수 있었다. 그분의 세월이 이런 말과 생각을 떠올리게 한 듯한 그런 울림이 꽃 스푼의 꽃이 내게도 솔솔솔 떨어지듯 다가왔다.
[삼학년]은 입가가 가장 많이 올라갔던 작품이었다.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던 10살 아이가 동네 우물에 미숫가루 통 훌훌 붙고는 사카린, 슈거도 몽-땅 넣었단다. 미숫가루의 생명이 잘 섞어야 한다는 걸 알았는지 두레박 가져다가 들었다 놓았다 하며 저었다가 집 가서는 뺨따귀를 찰싹. 하고 싶은 걸 멋모르고 하는 아이가 보였다.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는 말처럼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적이 더 대담한 우리이기에.
[콩밥 먹다가-딸아이에게] 얼마 전 보았던 세월호의 슬픔이 고스란히 다가온 영화, 생일을 보고 다시 이 시를 읽었다. 내가 사랑하던 가족 두 분을 보낸 기억에 생일과 [콩밥 먹다가]는 그 아픔을 세월로 덮어놓았던 감정 보따리에 꽁꽁 묶여있던 실끈을 살짝 풀어놓았더라. 예전보다 덜하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없음에 정다혜 시인의 콩밥처럼 떠오른다.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서도 그들과 함께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평상이 있는 국숫집을 가보고 싶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이 경험을 선물해준 이에 대한 감사함과 그때의 순간들이 지나갔다. 다시는, 다시는 현재의 순간으로 맞이할 수 없던 그날을.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에 가난, 그 가난으로 인해 더 깊어지는 사랑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소금, 짭조름한 소금의 맛으로 인생의 맛을 느끼는 중인 그의 경험이 그려지고, [항아리 속 된장처럼]은 모두에게 이 시를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었다. 깊은 맛을 우려내고자 한다면 갑갑한 항아리 독에 들어가 나가고 싶은 마음 꾸욱 참고 진득이 기다리고 내 살로 불순물도 다 품다가 썩고 썩어서 허파, 내장 다 녹은 후에 볕 좋은 날에 나와 식탁에 오른다는 내용인데 이 시는 위안을 타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주문진 명품 코다리, 세 마리 오천 원. 마트에 적힌 문구 앞에 서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내 신문지에 돌돌 말아 생일 선물로 꺼내든 [엉뚱한 생일 선물]. "이야, 내가 좋아하는 코다리네!" 이 말만이 맴돌던 시였다. 코다리, 아빠가 제일 좋아하시는 코다리. 최고의 선물.
* 출판사로부터 맛있는 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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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기 전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자유란 무엇인가. 흔히들 갈망하는 그 자유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리 원하는가. 그게 뭔지도 모르는데 왜 이를 원하는 거지? 이런 의문의 출발에는 속박되어 있는 삶이 깔려있다고 생각된다. '속박'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느낌이 더 많은데 장자 인문학을 읽으면서 이 경향은 줄어만 갔다. '속박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라는 부제에 이 책을 통해 속박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얻겠구나 싶었지만 이와 달랐다. 장자는 절대적 가치란 없다고 하며 모든 건 상대적이며 무언가를 옳고 그르다고 정할 수 없고 이를 논할 시간에 본질에 더 집중하라고 했다. 즉 그는 속박에 저항하는 힘을 주는 게 아닌 속박, 그 자체를 느낄 수 없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 법을 가르쳐준 셈이다. 새로웠다. 그의 모든 말들이. 생각들이. 장자라는 사람 그 자체가.
거짓이 되기 쉬운 가치관이라는 목차에 눈을 떴고 이제껏 꿈꿔오고 그를 동력으로 사용했던 나의 본질이 문득 허황되었다는 생각을 작년에 품었기에 부정을 반복하다 고민으로 한 단계 넘겼지만 정작 그 해답은 얻지 못했었다. 그래서 1장으론 어느 부분이 비었는지 지적받고, 2장에서는 적극적인 솔루션을 통한 '희망'을 얻어 가고자 했다. 이처럼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의 생각은 장자를 만나고 정확히는 안희진 선생님의 장자 인문학을 만남으로써 동해를 볼 수 있는, 내 생각 안에 스스로 갇히지 않는 개구리로 도약해보려는 바람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한껏 움츠렸던 지난날에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행하던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가 참으로 나약한 나를 비쳤음을 알지 못했었다. 그래도 이젠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사실과 주어진 틀에, 정형화된 것에 누군가를 끼어 맞추려고도 내가 그 안에 꾸겨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을 예정이기에 더 나은 나를 꿈꿀 수 있다.
위 두 문단엔 과연 추천하고 또 추천할 수 있는 장자 인문학이 내게 준 감명들이 담겨있다. 책을 읽고 이 글을 보기 전까진 어느 부분일지 알 수 없지만 장자 인문학이 이끄는 데로 이를 손에 쥐고 한적한 도로를 걸어 공기 좋은 산에 올라 책을 읽어 내려가면 필자가 감명받은 부분을 알 수 있을 게다. 장자 인문학은 내게 생각의 확장을, 행동의 불씨를 지펴준 책이자 몇 번이고 반복해 읽고 싶은 벗이다.
* 출판사로부터 서평단 자격으로 장자 인문학을 제공받아 벗을 삼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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