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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히려 더 밝은 곳. 그렇다고 밤인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는 곳.
대치동 447번지에 위치한 38층 고층아파트 침실에서 내려다본 강남이다.
-주원규, 《메이드 인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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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일어나는 부와 쾌락의 어두움을 그린 소설, 『메이드 인 강남』입니다.
저자는 주원규, tvN 드라마 <아르곤>을 집필한 작가입니다.
드라마 작가라서 그럴까, 이 책 역시 드라마나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재도 소재고, 묘사나 사건 전개 등도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장면들이 머릿속에 쉽게 상상되는 책이었습니다.
표지 디자인이 꽤 잘 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슈퍼맨과 배트맨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죠. 작중 '설계자'의 역할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일러스트입니다.
Y로펌의 주목받는 변호사인 '민규'는 일반 변호사들이 하는 일과는 조금 다릅니다. 강남의 재력가, 권력가들에게 의뢰를 받고 유명인들이 사건이나 사고에 휘말리면 그것을 의뢰인들이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것이 민규의 일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변호사를 이른바 '설계자'라고 부릅니다.
어느 날 강남의 카르멘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열 구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시신은 전부 나체입니다. 사인은 사체 복부의 자상. 정황상 마약에 취해 혼음 파티를 즐기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그중 하나가 인기 연예인 '몽키'라는 거죠.
민규가 받은 의뢰는 몽키의 죽음을 보다 명예롭게 포장하는 것입니다.
어두운 주제에 비해 스토리 자체는 제법 평이합니다. 복잡한 추리를 필요로 하거나 시간대를 왔다갔다하는 일 없이, 단지 민규와 재명에게 초점을 번갈아 맞추며 사건 전개에 집중합니다. 소재도 흥미로운 만큼 몰입해서 책을 읽을 수 있지요.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보통 이런 장르의 서사에서는 주인공이 보다 정의로운 중산층으로 등장하여 최종적으로 부패한 그들이 마땅한 벌을 받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데(영화 『베테랑』이나 『검사외전』을 떠올려 봅시다), 이 작품은 두 주인공마저 모두 직업윤리를 망각한 채 돈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변하지 않는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지죠.
가볍게 읽은 법한 책인데 불편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성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요.
주인공 민규는 작품의 첫 등장에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묘사가 나오고, 줄거리의 중요한 사건인 카르멘 호텔 펜트하우스 사건도 혼음 중 일어난 사건입니다. 여성이 등장했다 하면 죄다 콜걸이죠.
강남의 욕망과 일그러진 쾌락을 그리고 싶었던 건 알겠는데 왜 꼭 이렇게 성적인 부분을 부각해야만 했을까요?
성적인 묘사를 그리 반기지 않는 제 취향 문제도 있긴 할 텐데, 그래도 좀 아쉽습니다. 안 그래도 소재 자체가 자극적인데 지나치게 자극성만 추구한 것 같달까요.
화려함으로 무장한 채 온갖 오물을 묻히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메이드 인 강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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