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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세계문학전집 160)의 표지 이미지

깊은 강

엔도 슈사쿠 지음
민음사 펴냄

대학 선배이자 독서 모임 선배 고움이로부터 추천받은 책, 엔도 슈사쿠의 유작 「깊은 강」을 드디어 독토바에서도 다뤘다. 어마어마하게 긴 장편이지도, 엄청난 어려운 단어들이 즐비한 고전고설이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읽는데 오래 걸렸다. 왜일까. 아마 한 문장 한 문장 꼼꼼히 읽어야만 다음 문단이 이해가 되고 쉽게 넘길 수 없는 인간의 내면으로 가득한 내용이라 그런 게 아닐까 한다. 등장인물도 적은 편은 아니고, 이름도 헷갈려서 머리를 많이 굴려야 했다. 어쩜 모든 등장인물에 이입됐다가 실망했다가 공감했다가 어이없다가 또 고개를 끄덕이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기분과 함께 읽어냈다.

네 명, 아니 다섯 명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인도 바라나시의 깊은 강 겐지스강을 찾는 이야기다. 마지막 역자의 해설과 작가 연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섯 명 모두에게 작가의 실제 경험과 사상이 투영되어 있다.

병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이소베 (자꾸 이사배같아서 혼자 킬킬 웃었다) 할아버지. 언제나 조용하고 공기 같던 아내가 여자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눈을 감기 직전에 ‘환생해서 다시 만나러 오겠다’라는 말을 남기자 그 이후로 환생에 집착 같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전생에 자신이 일본인이었다는 인도의 어린아이를 찾아 인도로 향하게 된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줄이니 정신병자처럼 설명되는 것 같지만.. 아마 작가가 죽기 직전까지 환생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지 아닐지에 대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는 짐작이 된다.

어린 시절 만주 땅에서 부모님의 이혼으로 상처받았을 때부터 동물들로부터 위로를 받은 동화작가 누마다는 죽음의 위기를 넘길 때 자신을 위해 대신 죽어준(것처럼 느껴지는) 구관조를 찾아 은혜를 갚고자 인도를 찾는다. 작가가 실제로 만주 다롄에서 자라며 겪은 부모의 이혼과 세 번에 걸친 폐 수술로 인한 고통을 누마다를 통해 표출한 듯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얀마로 파병되어 끔찍한 경험을 한 기구치 할아버지. 인도군과 영국군에게 쫓겨 퇴각하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까지 갔다가 한 전우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다. 종전 후 일본으로 돌아가 시작한 운송업이 한국전쟁의 군수 경기와 시기가 들어맞아 번영하게 된다. 역시 일본놈들이 전쟁의 아픔이니 뭐니 하며 마른 수건 짜내듯 감동 자아내는 건 들어주면 안 된다. 아무튼, 그러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우를 위해 일자리를 소개해주는데, 성실하게 일을 잘하던 친구는 별안간 피를 토하며 위독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술로 인한 각혈의 원인을 알아보니 미얀마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동료의 시신을 먹고야 말았던 과거, 그리고 그 동료의 눈을 쏙 빼닮은 동료의 아들을 보고 술독에 빠졌던 가슴 아픈 사연을 알게 된다. 결국 그대로 세상을 뜬 전우를 위해, 그리고 가슴 아픈 죽음을 맞이한 전쟁의 희생자들을 위해 인도를 방문하게 된다. 작가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꼈던 전쟁의 슬픔을 기구치를 통해 위로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봤자 일본놈들이지만.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내 기준 가장 중요한 인물인 미츠코와 오쓰의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작품 ‘모이라’의 주인공 같은 미츠코와 조세프(몰라서 속상하다)같은 오쓰. 미츠코에게 오쓰는 그저 독특한 옷을 입고 남들과는 다르게 신실하게 성당을 다니는 별종이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그가 자꾸 눈에 밟힌다. 종교활동을 못 하게 막고서 며칠 대충 놀아주다가 버렸는데, 대뜸 그 상처로 인해 신부가 되겠다고 리옹으로 떠났다는 것 아닌가? 결국 신혼여행으로 떠난 파리에서 구태여 남편과 떨어져 홀로 ‘테레즈 데케루’(못 읽어봐서 속상하다!!)의 배경지를 관광한 후 오쓰를 만나러 리옹까지 간다. 프랑스의 무궁화호 떼르를 타면 파리와 리옹은 무려 여섯 시간이나 걸린다. 그 시간을 이겨내며 찾아간 정도면 이 사람아, 그거 사랑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게 맞을지는 모르겠다. 신을 양파(타마네기)라 불러대며 신은 그 무엇도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누구에게나, 어떤 종교에나 신은 존재하고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는 오쓰는 결국 이단 취급 받으며 신부가 되지 못한다. 진정한 사랑이 대체 무엇인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항상 궁금해하던 미츠코는 남편과 젊은 나이에 이혼을 하고, 항상 진정한 사랑을 말하던 오쓰를 찾아 이번엔 인도로 떠나게 된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테레즈 데케루라는 소설을 사랑한 작가의 문학적 감각이 미츠코에게 투영되고, 부모에게서 종교를 물려받았지만, 일본인으로서 유럽의 기독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깨달은 작가 본인의 종교사상을 오쓰에게 투영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기독교를 물려받아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례를 받은 나도 오쓰가 내뱉는 말들에 심히 공감할 수 있었다. 저 시대에 일본에서 태어난 기독교 신자가 저런 생각을 하다니. 놀랍다.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민폐 덩어리인 딱 전형적인 일본의 멍청한 민폐 젊은이 카메라맨 산조 때문에 오쓰는 폭행에 휘말려 위급한 상태가 되며 이야기가 끝난다. 이거 완전 인도 배경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거 아니냐! 영화도 나왔었다는데, 조금 궁금해졌다. 그리고 읽는 내내 한 영화가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는데, 바로 몇 년 전 부국제에서 봤던 ‘호텔 셀베이션’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노인이 겐지스강의 호텔 센베이션으로 죽음을 준비하러 가겠다고 우기자 아들이 억지로 따라가서 겪는 이야기다. 처음엔 일해야 되는데 핸드폰도 안 터지고 더럽게 손으로 카레를 먹어야 하고 지저분하고 소름 돋는 죽음의 호텔이 끔찍하기만 했던 아들이, 결국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는 영화였다. 생각보다 잔잔하고 웃음코드도 간간이 들어간 영화를 보고서 바로 인도 카레를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인도인들이게 겐지스강은 어떤 걸까. 한 번 쯤은 내 오감으로도 느껴보고 싶어졌다.
2019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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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anna5nme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을 읽으면 신비로운 감정에 휘말린다. 어딘가엔 있을 법한, 주변에 있을 법한, 혹은 나일 수도 있을 법한 한 사람의 마음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데비 챙, 숲의 끝, 저녁 산책, 호시절이 특히나 좋았다. 의도치 않은 오해, 사랑과 우정의 그 비슷하고도 애매한 감정, 자연스러움 속 의문을 품게 만드는 불편함 등이 너무 잘 표현되어 있다.

애쓰지 않아도

최은영 (지은이), 김세희 (그림)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22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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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나님의 It Ends with Us 게시물 이미지
표지 속 파란 백합꽃 그림에 이끌렸다. 매일 한 권씩 공개한 시리즈물이라 짧게 짧게 27권까지나 있다고 하니, 가볍게 하루에 한두 권씩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렇게 네 시간 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고 심지어 우느라 막힌 코훌쩍이는 소리에 아기가 깨진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로맨스인 줄 알았다. 인터넷 로맨스 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이미 처음부터 상당히 재밌었고, 5권쯤 읽어갈 땐 너무 로맨틱 자극적이라 이 소설에 심취해 읽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읽는 내내 제목이 신경 쓰였다. It Ends With Us의 Us는 화자 릴리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아무래도 아틀라스일까? 이 사랑 이야기의 끝은 누구와 함께하는 걸로 끝날까? 그런데 왜 한국어 제목은 ‘우리가 끝이야’일까? 우리가? 우리로? 한 권 한 권 넘어갈 때마다 궁금했는데, 26권 마지막이나 되어서야 알았다. 로맨스의 끝을 뜻하는 게 아니었구나.



가정폭력을 당하고도 상대방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몰랐다. 나도 주인공 릴리처럼, 피해자들이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줄 몰라서 안 떠나는 거라고 생각해왔나보다. 그런데 이 책이 나를 완전히 납득시켰다. 폭력가정에서 자란 릴리가 또 자신의 가정 속에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도 나는 이 소설이 끝나기 직전까지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27권 중 26권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주인공이 딸에게 하는 말 ‘이 가정폭력의 대물림은 우리에서 끝내는 거야’에서 나온 It Ends With Us라는 걸 알았다.



제법이다. 나도 라일에게 꿈뻑 속아 넘어갔다. 아버지 장례식날 속이 답답해 올라간 고층 건물 옥상이라는 인소에나 나올법한 첫 만남, 갑자기 뚝딱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열었더니 대뜸 성격 좋고 예쁘고 착한 밀리어네어가 심심해서 일하겠다고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남주의 여동생이고, 남주는 큰 병원 의사에, 진지한 만남 싫어파인데 여주를 만나고서 사랑을 알게 되고, 어쩌다 여주에게 해를 가하지만 알고 보니 또 엄청난 일을 겪어서 트라우마로 인해 발현되는 행동이었다니 나 같아도 두 번 세 번 용서하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약자 폭행에 있어 이유가 되어줄 순 없다. 라일이 아무리 화나도 마동석 앞에서 퓨즈가 나가진 않을 것 아닌가? 감히 릴리를 힘으로 밀치고 이마를 꼬매야 할 만큼 세게 박치기를 하다니 빌어먹을 자식.



작가는 본인이 자라온 가정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와서 이야기를 적었다고 한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가정폭력을 당해온 피해자들을 위한 글을 적고 싶었다고. 다른 건 몰라도 피해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확실히 되었다.



찾아보니 올해 곧 아틀라스를 중점으로 한 소설 It Starts With Us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이건 확실히 로맨스 소설이겠다고 생각하는 건 또 나의 착각이려나. 아틀라스 너무 완벽한 캐릭터라 세상 제일로 오글거릴 것 같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다. 이왕이면 원서로.





“이 세상에 나쁜 사람 같은 건 없어요. 우리 모두 가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냥 헤엄치는 거야. 그냥 계속 헤엄쳐, 계속, 계속.”



나는 딸의 이마에 입 맞추고 약속했다. “여기에서 멈춰야 해. 나랑 네가 끝내는 거야. 우리가 끝내야 해.” - <우리가 끝이야> 중에서

It Ends with Us

콜린 후버 (지은이) 지음
Thorndike Press Large Print 펴냄

👍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추천!
2022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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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anna5nme

  • 안나님의 작별인사 게시물 이미지
김영하가 9년만에 내는 장편소설이 풀린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기대했다. 공개되는 날 바로 읽고 싶어서 읽던 책을 서둘러 후다닥 읽어버렸을 정도. 일부러 책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첫 장을 읽고나서도 이게 어떤 내용으로 흘러가게 될지 짐작도 못 했다.

얼마전 읽었던 김동식의 ‘아웃팅’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대신 훨씬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이고 잔잔하고 길게 풀어진 느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이 사라지자 끝내 인공지능도 사라지게 되는 내용이다.

나는 sci-fi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를 떠올렸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가 바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아일랜드’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바깥 세상이 오염되어 환상의 섬으로 가기 전의 격리시설에 발탁되어 온 선택된 사람들이라 믿고 지냈지만 알고보니 복제인간을 보관하는 시설이었다는 것. 이곳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간다는 건, 복제인간의 주인이 장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소설 ‘작별인사’ 속 선이가 스칼렛요한슨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평양 스칼렛 요한슨.

스토리 전개보다는 이 책에 몇 번이고 언급되는 오즈의 마법사와 빨간머리 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신선하지 않은 내용에 신선한 결말이어서일까, 흥미롭게 읽었다. 신기할 정도로 혼자 잘 놀아준 아기를 앞에 두고 읽어서 더 재밌었을수도.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작별인사

김영하 (지은이) 지음
복복서가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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