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리당의나귀
@bwiridangeuinag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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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자들 상
헤르만 브로흐 지음
열린책들 펴냄
이 책은 상, 하권으로 분책되어 있고 각자 연결되어 있는 세개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소설: 1888ㆍ파제노 혹은 낭만주의, 두번째 소설: 1903ㆍ에슈 혹은 무정부주의, 세번째 소설: 1918ㆍ후게나우 혹은 즉물주의] 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3부작 소설의 각 제목들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문명이 몰락하는 과정의 각 단계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상권에 두개, 하권에 세번째 소설이 실려 있다.
구입한 상, 하권의 발행일이 달라 연결되는 페이지 숫자도 맞지 않았고 인쇄 글자의 폰트 크기나 글자간 밀도가 같지 않았다. 아마도 하권의 남아있던 재고가 나에게 온 것 같다.
어쨋든 내가 구입한 책의 기준으로도 1,000페이지에 가까운 상당한 분량이며, 내가 갖고있지 않은 최근 발행한 하권을 기준으로 한다면 1,000페이지를 훌쩍 넘길 것이다. 완독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쓰여졌지만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첫 대면하는 작가의 지적이고 치밀한 문체, 문장에 내면이 충만해졌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의 호평으로 선택한 책이었고, 특이한 구성과 세밀한 심리/상황 묘사 등이 인상적이었으며 문체 등 부분적으로는 사견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어떤 단면이 연상되기도 했다.(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스스로에게 다소 아쉬운 것은 일부 인물들의 생각이나 행위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반응'이 적지 않았는데 그것이 시대의 한계인지, 지역적인 특성이나 젠더에 대한 몰이해인지, 어쨋거나 아직도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인상 깊은 문구)
-그들은 그것을 승리처럼 느꼈지만, 그 승리에 패배가 따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포옹 속에서 인식에의 눈을 감아 버렸다.
-엘리자베트는 그의 손이 꼬옥 쥐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건 마치 그녀를 충분히 확고하게 붙잡아 놓을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암시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에게 요아힘과 루제나는 그들 본질의 작은 조각만을 지니고,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 지금의 나이에 도달한 존재로 여겨졌다. 커다란 조각이 있는 곳은 어딘가 다른 곳, 어떤 다른 별이나 다른 시대, 혹은 단순히 어린 시절일지도 몰랐다.
-신은 미래를 가림으로써 인간을 축복하고, 과거를 볼 수 없게 함으로써 저주한다.
-어린 시절을 넘어 어른으로 성장한 그가 고독하고 버림받은 채 언젠가 죽음에 맞서야 함을 예감할 때, 모든 인간이 받는 저 이상한 압박감, 신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이상한 압박감이 찾아들면 인간은 손에 손을 잡고 어두운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갈 동료를 찾는다.
-오직 목적이 있는 사람만이 위험을 두려워한다. 그가 목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유롭고, 자유로 구원받은 사람은 죽음을 감수했던 사람이다....(중략) 그렇다. 죽음 앞에 선 인간에겐 모든 것이 허용된다. 모든 것이 자유롭다.
-자유와 살인은 얼마나 가까운가, 마치 탄생과 죽음처럼! 자유 속에 던져진 사람은 사형대로 다가가며 어머니를 부르는 살인자처럼 고독하다.
-낯선 이방인은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아. 그는 해방된 사람이니까. 얽매여 있는 사람만이 고통을 받지.
-어둠 속에서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밤은 자유의 시간이며 웃음은 자유롭지 못한 자의 복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식하고 있었다. 불멸성과 절대성을 현세에서 찾으려는, 그 쫓기는 사람들이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그들이 찾는 것에 대한 상징이나 대용물에 불과함을. 그들은 자기들이 찾는 것을 이름 부를 수 없을 것이었다.
-코른이 그녀를 배반한다면 그녀는 그를 죽이는 대신 황산을 부을 것이다. 그렇다. 그런 식의 분배가 질투에 적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소유했던 자는 대상을 없애려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이용했던 자는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레츠키 소위의 팔은 절단되었다. 팔꿈치 윗부분이었다. 쿨렌베크는 일을 하면 철저하게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야레츠키의 나머지 부분은 병원의 정원에 앉아 있었다.
-왼쪽 팔을 잃은 후부터 오른쪽 팔이 늘어져 있는 무게가 느껴집니다... 그것도 잘라 버렸으면 싶습니다
-모든 사유는 공간적인 것에서 발생한다는, 사유 과정은 말할 수 없이 뒤엉클어지고 다차원적인 논리적 공간의 혼지(混知)를 묘사한다는 이러한 이론은 대단히 커다란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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