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리당의나귀
@bwiridangeuinag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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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어크로스 펴냄
이 책을 읽기로 선택한 경위는 불투명하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기억나지 않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현저하게 많다. 아마도 포탈에서 책소개를 하면서 몇문장 제시한 것이 내 정서나 스타일에 부합했던 것이고, 구매리스트에 올랐던 것 같다. (제목을 메모해 놓았다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선택, 구매한다)
저자는 대학의 정치사상사 교수지만 흥미로운 이력도 있다. 독립영화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었고, 영화평론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한다.
책의 제목으로 내용 전반을 짐작한다면 다소 당황 또는 실망할 수도 있다. 여러가지 주제의 다양한 짧은 글들을 부담없이 만날 수 있다.
제목은 memento mori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무난할 것 같다.
해학적, 조소적이며 풍부한 유머감각으로 아주 재치있고, 한마디로 재미있다. 비교적 가볍고 소소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고 있지만 기저에는 냉철하고 무거운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한가지 시덥잖은 의문이라면,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나 인용하는 문구의 상당수가 특이하게도 일본의 작가, 학자 등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한국, 중국의 예는 거의 없음)
일본에 호의적이라고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보편적이라고 하기에는 그 정도가 다소 과다하다고 느껴져서 이유가 잠시 궁금해졌을 뿐이다.
(인상 깊은 문구)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한다. (루크레티우스)
-내리는 눈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모래시계 바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만화 '허니와 클로버' 中)
-이렇듯 성장은, 익숙하지만 이제는 지나치게 작아져버린 세계를 떠나는 여행일 수밖에 없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다.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소멸에는 어떤 예외도 없다. 어떤 존재를 지탱했던 조건이 사라지면 그 존재도 사라진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멸의 여부가 아니라 소멸의 방식이다.
-그때도 나는 다소곳이 앉아 있기보다는 앞에 놓인 탁자를 당수로 쪼개며 "선생님들, 논문을 읽지도 않고 심사한다고 여기 앉아 계실 수 있는 겁니까!" 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목젖을 뽑아 줄넘기를 한 다음에, 창문을 온몸으로 받아 깨면서 밖으로 뛰쳐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 위력은 자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위력은 그저 작동한다. 가장 잘 작동할 때는 명령할 필요도 없다. 니코틴이 부족해 보이면 누군가 알아서 담배를 사러 나간다.
-스스로 대성당을 짓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완성된 대성당에서 편하게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생텍쥐페리)
-악이 너무도 뻔뻔할 경우, 그 악의 비판자들은 쉽게 타락하곤 한다. 자신들은 저 정도로 뻔뻔한 악은 아니라는 사실에 쉽게 안도하고, 스스로를 쉽사리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염세와 자살은 관념의 유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마지막 말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고자 하지 않는다."
-사람은 밥 없어도 못살고, 사회가 없어도 못산다지만 의미가 없어도 못산다......... 사람은 의미가 없으면 못사니까,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합리화를 시도한다.
-아는 자는 행동하지 않고, 모르는 자는 돌진한다. 이것이 인생 아니던가?
-김교수는 찰나의 행복보다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 같은 소소한 근심을 누리는 건, 그것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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