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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앓이로서 존경하고 애정하는 이호 교수님의 책. 그알 유튜브 속 교수님에게서 느껴지던 인문학의 향기가 이 책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끊임없이 던지시던 농담은 쏙 빼고 진지하게 쓰셨다더니, 정말이네.
예전에 <형사 박미옥>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인데, 진심을 품고 한가지 일을 오래한 사람들은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어느새 철학자가 되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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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환자나 사망자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이나 참사 속 생존자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믿기 어려운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살아 있는 혹은 살아 남은 자들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게끔 하려는 의사로서의 노력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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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들은 대형사고 속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역할도 하고 있기에, 대구 지하철 참사나 세월호 사건에서의 경험 또한 언급한다. 처벌 대상자를 가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고, 대안을 제시하고,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적절한 예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p.177)’는 교수님의 말에 십분 공감한다. 다양한 참사 속 유가족들이 일관되게 요구하는 것은 원인 규명과 이를 예방하는 시스템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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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경험은 '삶을 제대로 살아야 죽음도 제대로 맞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잘 살아온 사람이 잘 죽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 것일까? 제대로 된 죽음을 맞는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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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어떠한 조건을 충족하거나 현재의 고단함을 참아야 얻어낼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그저 우리 삶의 끝에 다다르기까지의 매일매일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맛있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 좋아하는 이들과 밥을 먹으러 가는 그 길에 행복이 있다. (p.216)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이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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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는 와중에 또 책이 읽고 싶어지는 책. 저자의 직업이 편집자라 책을 워낙 많이 읽어서 그런지, 일상에 대한 단상과 인상깊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함께 엮어내는 글솜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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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것보다 좋은 게 좋다. 행복은 부담스럽다. 행복하면 그 행복을 지켜야 하고, 지키지 못하면 불행해질 것 같아 불안해진다. 행복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노력으로 쟁취하는 무엇인 것만 같다. 좋은 건 감당이 된다. 좋으면 좋아서 좋다 말하고 좋다 말하면 더 좋아진다. 그래서 행복할 때보다 좋을 때 더 잘 쉬는 것 같다. 좋은 건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 편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것, 가진 게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한 것, 만족스럽기도 하고 부족하기도 한 것 같다.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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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에 내려갈 때마다 아파트가 달리 보인다. 어느 때는 선물 같고, 어느 때는 공연히 벌인 일 같다. 집이 휑한 게 어느 때는 여백 같고 어느 때는 더 채우고 싶다. 작업하기 좋은 레지던스처럼 보이다가 숨어 지내기 위한 도피처 같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상황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다. 일이 든 사람이든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이니 틈을 두어야 내가 정말 원하는 상태를 알 수 있지 않을까.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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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소와 생텍쥐베리는 도시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다. 도시에는 인생이 없고(생텍쥐베리), 치유의 힘은 물질적 풍요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속도와 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루소). (p.208)
나의 손이 내게 말했다
이정화 지음
책나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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