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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무엇이 멀고도 가까운 걸까? 이 책을 통해 읽고 쓰는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추천을 받았다.
읽고 쓰는것에 대한 즐거움. 자기계발서인가?
에세이라면 자신의 읽고 쓰기의 과시적 에세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 수 있는 에세이 이지만,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자기과시적이지도 않다. 굳이 비유하자면, 목표지점을 향해 묵묵히 기어가고 있는 거북이나 달팽이의 느낌을 주는 에세이 인것 같다. 그 목표지점은 나 자신과 그리고 애증의 대상인 나의 엄마이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된 엄마를 돌보게 되면서 엄마와의 불편했던 기억과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여정.
점점 죽어가는 엄마를 인간으로서 딸로서 이해하게 되는 여정.
그 모든 것들이 읽고, 쓰는 것들로 다듬어지고, 보완되고 완성되었다.
그 대상이 '엄마'로만 제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감정을 이입하는 또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전에 읽었던 "모친상실(청미출판사)"이 기억났다. 에세이 버젼이라고 해야할까.
가까운 사람같지만, 더 멀게 느껴지는 사람.
먼 관계의 사람 같지만,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
그 간극을 오가며 오늘도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시간을 갖는다.
p.160
"가까이 있는 거야."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감정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을 전한다. (중략)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 감정은 그 자체의 거리를 가진다. 애정은 근처에 가까이 있는 것, 자아의 경계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침대 옆에 함께 누운 사람과 수천 마일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세상 반대편에 있는 낯선 이들의 삶에 깊이 마음을 둘 수 있다.
p.278
먼 거리를 작은 공간에 압축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미로는 인간이 만들어 낸 다른 두 고안물과 닮았다. 하나는 실타래고, 다른 하나는 단어와 문단과 쪽을 하나로 묶어 놓은 책이다. 책의 문장이 실타래에 감긴 한 가닥의 실이라고, 그 문장도 실처럼 풀 수 있는 것이라고 상상해 보자. 그렇게 풀린 문장이 만들어 낸 선 위를 걸을 수 있다고, 실제로 걷고 있다고 말이다. 독서 또한 하나의 여정이다. 눈은 선처럼 펼쳐진 생각을 따르고, 책이라는 압축된 공간에 접혀 있던 그 생각들이, 당신의 상상과 이해 안에서 다시 차근차근 풀려 나간다.
p.327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어머니가 먼저 말을 움직이면 그에 따라 모든 것이 진행되는 체스시합 같았다. 내가 쓸 수 있는 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수들은 불가능했거나, 적어도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구경꾼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쉽다.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 고결하게 지내는 방법 같은 것 역시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은 그보다 조금 어렵다. 체스와 마찬가지로 관계에도 규칙이 있고,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계기나 확신, 원하는 것을 얻을 새로운 방법 등이 필요하고, 때로는 그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한 경우도 있다. 나이트가 쓰러지고, 폰은 기어 다녔다. 그렇게 몇 십년이 지나고, 마침내 체스보드는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말들은 이름을 잃었고, 시합은 그대로 멈췄다.
p.342
이제 어머니를 생각하면 한창때 알 수 없는 힘에 휘둘렸던 여인이 보인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 채, 자신의 욕망이나 그 안의 모순도 모른 채, 그렇게 검증되지 않은 것들 틈에서 고통을 느끼고, 기쁨도 느꼈던 여인. 어머니를 둘러싼 풍경은 각각의 부분이 서로 어긋나는 미로 같았고, 어머니는 그 안에서 길을 잃었다. 나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은 전통적인 이야기, 명령, 가치와 기준이 뒤섞인 어떤 비극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우리 둘 다 쓸모없는 성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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