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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은이), 송은경 (옮긴이) 지음
민음사 펴냄
회사일로 지쳐 있던 2년 전, 회사 동기 오빠가 차를 빌렸다가 (옆구리를 긁어놓고) 돌려주면서 선물 몇개를 같이 줬고, 그 안에 있던 책. 이상하게 집에 있는 실물 책은 참 안 읽게 되다가 독서모임에서 내가 선정해서 읽은 책.
스티븐스를 처음엔 무관심한 T형 로봇 인간처럼 느꼈는데, 읽다 보니 ‘위대한 집사’라는 직업관에 일종의 강박처럼 인생이 매몰된, 그래서 다른 경험과 사고를 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여지는 모습과 감정 절제를 우선하며 살아온 사람이 우물을 깨고 나오듯 여행을 하면서 겪는 여정들이 펼쳐진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여정의 후반부. 저녁 무렵 선착장에서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던 사람들과 그 빛을 보고 행복해하던 장면. 그걸 보며 스티븐스도 뭔가를 깨달은 듯했지만, 곧이어 새로운 주인을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유머감각을 익히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에서 결국 또다시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자신을 밀어넣는 듯해, 그게 이 책의 제목과도 연결된다고 느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연결되는 달링턴 경, 그리고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던 스티븐스, ‘위대한 집사’의 정의(주인의 가문 → 사회적 기여 → 보고 듣고 생각하지 않는 척 하기), 켄턴 양과의 가치관 대립,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이야기 등도 함께 떠올랐다.
올해 읽은 책 중 단연 베스트였고, 왜 그 오빠가 그 당시 일밖에 모르던 나에게 이 책을 선물했는지 2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앞으로 직장인들에게 고전 추천해달라는 말이 나오면 이 책을 먼저 추천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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