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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나누는 기분
박소란 외 19명 지음
창비교육 펴냄
종종 어린시절 내가 쓴 습작 노트를 본다. 그때는 무슨 열정에 그렇게도 열심히 문장들을 기록했는지, 서툰 문장이라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의가 든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과거의 내가 남긴 문장들에서 위로와 응원을 얻곤 한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우리 집으로 배달된 책 한 권에 찡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그 연장선일까. 『도넛을 나누는 기분』이라는 제목의 책을 받아들고 작가 이름을 보는데, 익숙한 이름들이 잔뜩 나열되어 있다. 김소현, 박소란, 박준, 유계영, 유희경 등 우연이라기엔 선물세트 같은 작가들의 이름에 한번, 이것이 그들의 초기 작품이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라움과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도넛을 나누는 기분』은 기성 시인 20명의 “시의 마음을 처음 품던 시절의 작품”들을 세 점씩 모은 시집이다. 그래서 총 60편의 시, 20편의 시작 노트를 만날 수 있다. 이름난 작가들의 초기작을 볼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민낯을 보는 기분에 비밀을 공유받는 기분이었다. 아직 그들이 “시인”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시절의 문장들. 그 날 것 그대로의 시로 세상을 마주한 것들. 그래서인지 문장은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고, 마음에 쉬이 와닿았다.
엄마와 싸워 이겼지만 이긴 것 같은 기분이 아니라는 문장에서, 언제인가 한 권의 책이 되어 닫혀 잇던 마음을 펼쳐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으리라는 문장에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비밀이 늘어나는 것이라는 문장에서, 그 시절 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리워져 눈물이 나려 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마음과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 도넛을 반을 뚝 잘라주면서도 어디서 났는지는 묻지 말라는 마음, 오지도 않는 개를 부르며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 어쩌면 우리도 다 지나온 시간들이기에, 그 문장들이 주는 감정은 한가지 색이 아니라 여러 가지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도넛을 나누는 기분』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도넛을 나누는 기분』에 머물러있지 않고 새로운 문장을 계속 썼기 때문이라는 것에 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도넛을 나누는 기분』에 실린 작품들이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문장이 점점 단단해졌기에 민낯 같은 이 마음들이 세상에 나왔고, 나처럼 아직 성글어지지 못한 이들에게 닿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 더 오래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내가 만난 『도넛을 나누는 기분』은 연습장 하나에 오랜만에 “2025”를 적는 용기를 주는 책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빈 노트지만, 그곳에 다시 무엇인가를 남겨보라고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았다. 아마 『도넛을 나누는 기분』을 만나는 많은 이들이 그들의 “첫 마음”처럼, 자신의 첫 마음을 만나고,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용기를 얻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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