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리 작가의 한 팬으로서 작가의 작품 7편 중 마지막 작품
감상을 끝내며 책에 대한 깊은 감동과 더 이상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으로 약간 긴 소감의 글을 남긴다.
문학상의 수상작 저자이기도 했지만, 아마도 작가의 배경은 소위 문단의 평가를 받는데 분명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거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는 의구심,
서사의 넓은 스펙트럼과 고유의 문법을 가진 문장,
독특한 상상력과 주제를 표현하는 작가만의 방식은
적어도 나에게는 국내의 어느 소설의 그 것들 보단 훌륭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작가의 작품 한편도 빼놓지 않고 소설이라는 장르가 다른 예술의 영역과 다르게 매력있는 분야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구체적으로 7편의 작품마다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으며
채도가 밝은 쪽에는 '합체'와 '양춘단 대학 탐방기',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가 위치하고
어두운쪽에는 '맨홀'과 '번외'가 그 중간 어디쯤에 '세븐틴 세븐틴'과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이 속하지 않을까 싶다.
밝은 쪽은 희망이나 유머에
어두운 쪽은 열외와 차별의 색을 가지고 있다.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넘어가고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스포일러 포함될 수 있음)
작품은 이국적인 분위기 설정과 함께
가상의 세계를 아주 쉬운 방법으로 설정하여
계층이 구분된 미래의 어떤 시점으로 나를 이동시켰다.
절대적으로 분리된 계층의 틈을 넘어온 사람들의 동선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서늘한 진실 정도가 책의 큰 이야기인데,
가족과 친구의 관계안에 촘촘하게 연결된 서사가
비밀을 간직한듯 얽혀있다가 풀려나아가는 방식이다.
만들어놓은 공간과 시간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어렵고
경험하지 않은 낯선 배경으로 빠지는 것은 쉽지 않은데,
인물과 소재, 대화가 작가가 설정한 곳에 매우 자연스럽게 어울려아주 독특한 무채색 세계를 창조하며 몰입하게 한다.
작가가 창조한 계층의 세계는
어쩌면 처음부터 예고되어있던 불완전한 세계로 보인다.
관찰자인 나는 그런 미묘한 불안감을 안고 동행하면서 목도하게
되는 섬세한 균열은 후반로 가면서 서서히 간격이 벌어지며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지만
소설 속 인물들 안에서는 잘 감춰졌다가 갑자기 노출되는 반전을 가져오기도 하며 긴장감을 준다.
이야기의 완급조절과 시점이 전환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바톤을 이어가는 소설의 장치는
마치 지휘를 하여 악단을 통솔하듯이 내 감상을 조율하기도 한다.
그리거 소설의 배경 전체를 관통하는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완벽한 계층이라는 모순이 있는데, 이 모순이 가져오는 불안의 틈을 쉴틈없이 서사로 망치질하며 윤리, 정의감, 연대감 따위의 현재 시대에 아래 깔려있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전에 없었던 소설.
소설의 마지막 주인공 '다윈'은 계층의 비밀을 쉼없이 파고들다가 진실을 마주하고는 끝내 자신이 먼저 무너지는 선택을 한다.
진실과 정의 보단 자신의 유전자를 지키기 위한 본능의 선택.
1859년 찰스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말한 그 선택.
나 역시 살아있는것은 그런 수 많은 선택의 결과였을 것이다.
어느 누가 이 명제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쓰고보니 내용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개인적인 기록이 되었다.
작가와 책이 반짝거렸으면 좋겠고,
조금 더 주목을 받고 많이 읽혔으면,
아니 무엇보단 비슷하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추가로 책을 읽으며 감상을 도와준 음악이 있었는데
슈베르트 즉흥곡 D.899이었다.
읽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