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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김화진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동경

김화진 지음
문학동네 펴냄

"너 그 사람이랑 친해?"라고 묻는 질문에 우리는 망설인다. 친하다고 말할 수 사이인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했다. "난 걜 되게 아끼고 걜 되게 좋아해"(140813 푸른밤 종현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멈칫했던 순간들. 흔히 연애에서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고민하는 것처럼 우정에서도 언제나 조금씩 흔들렸고 심술 부린 날들.

『동경』은 여름에서 다시 여름으로 끝나는 시간 동안 아름, 해든, 민아의 성장과 우정을 담은 장편 소설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타인을 통해 나"를 보라는 말이 있다. 솔직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아름은 동경하는 해든과 민아를 보며 자기를 되돌아본다. 해든 또한 아버지 장례식장에 찾아온 아름과 아플 때 옆에 있어주는 민아를 보며 자신의 심술에 대해 생각한다. 홀로 아등바등 버텨왔던 민아는 조금씩 아름과 해든에게 기대기 시작하며 달라진다.
"도대체 나는 누구지. 그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은 그 둘을 섞은 모습도 아니고 그저 여백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이제 나는 좀 나이고 싶어.(p.197)" 아름과 해든, 민아는 각자의 시선에서 둘을 바라보다가 비로소 "나"를 맞닥뜨리면서 카메라를 드는 아름이 되고, 이번 생은 최선이라고 답하는 민아가 되고, 다시 짓는 걸 찍을 거라 답하는 해든이 된다.

이를 직업적으로 조명하기도 한다. 인형 리페이팅을 하던 아름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 직접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물론 이는 흔한 직업적 성장에 해당한다.

이렇게 『동경』은 뒷 이야기를 예상하게 만드는 흔한 서사가 등장한다. "아픈 가족 이야기"로 다른 장편들과 차별점이 없었다. 또한, 곳곳마다 감정이 과잉으로 느껴진 부분들(도자기 사건으로 인한 아름의 감정)도 있었으며, 후반부에 갈수록 분량을 늘리기 위한 마무리 서사(봄, 여름 편)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동경』은 오래된 카메라 속 문득 꺼내보며 웃는 얼굴들을 닮았다. 책상에 둔 액자에 있는 사진처럼 매일 보지는 않지만, 억지로 미소 지었던 카메라의 오랜 얼굴을 보면 왠지 어렴풋한 기억을 잡아버리는 것만 같다. 『동경』 역시 예상되는 성장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마음이 계속 가는 이유는 우리가 오래된 카메라의 사진을 보고 웃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우정은 미끄럽다. 누군가와 부딪혀서 싸우고 혼자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넘어진 게 웃긴 추억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우정은 시간을 쌓아간다. 상대방을 생각하느라 그 사람과 친한 사이냐는 질문에도 편히 대답 못하지만, 이제 그처럼 소심하게나마 걜 되게 아끼고 좋아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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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매일매일이 바빴던 2024년이 끝나고 나는 여행을 갈망했다. 특히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해외에 가고 싶다며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동시에 드는 생각은 나는 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가, 였다. 지금까지 '근래 갔던 이탈리아 여행이 좋아서'라고 답했지만, 이탈리아에게만 해당되는 답이었을 뿐, 여행을 가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으므로 마음 한편에 궁금증이 있었다.

이는 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확장되기도 했는데, 왜 나는 자꾸만 어디로 떠나고 싶어 하는가, 이다. 『여행의 이유』는 작가 김영하가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들을 찾는다. 근본적으로 여행하려는 욕구의 발현, 여행에서 '나'라는 존재의 변화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여행이 좋다고 대답했지만,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여행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일기가 아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김영하의 여행일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어떤 걸 했다는 단순한 나열들이 없다. 여행 성향과 같은 유행도 따라가지 않는다. 기어코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의 이유"를 끈질기게 쫓아간다.

-여행은 노바디
그는 여행을 '아무것도 아닌 자(노바디)'가 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어버리는 것. 우리는 지금 MBTI 검사를 하고, 친구들에게 나를 질문하면서 나를 누구인지 알려고 애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온전한 나를 여행지에 맡긴 채 즐긴다. 여행지에서 흔히 "어차피 나 모르잖아"라는 말을 하듯, 우리는 여행지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나가는 사람이 되었을 때의 희열이 있다. 나에게 벗어나 '개별성을 잃어버'릴 때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 나의 여행
김영하의 여행 이야기였지만, 나의 여행 이야기를 찾고 싶게 만든다. 요새 좋은 작품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답한다. 가끔 시나 소설에서 그들만의 세계가 있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느꼈던 적 있다. 김영하의 에세이는 나의 틈 만들어 자꾸만 나만의 답들을 찾아 나서게 한다.

- 그 틈에서 찾은 나의 답
그렇다면 나는 왜 여행을 가려고 애쓰는가. 여행을 가려는 바깥의 이유들보단 그저 아무 이유의 보탬도 없이 떠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말했듯, 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시간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나의 현재는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나는 지금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어디론가 떠나서 온전한 현재를 보내고 싶어 했던 것만 같다.

앞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날 때마다 김영하를 떠올릴 것이다. 김영하가 덧붙인 여행의 이유를 떠올리며 나 또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금세 떠나버리고 싶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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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408

믿음을 따라 들어오는 어둠, 막을 방법이 없으려나

온다는 믿음

정재율 지음
현대문학 펴냄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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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라디오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중학생, 불면증에 잠을 못 이루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MBC FM 4U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들었다. 당시 명언을 좋아했던 나는 오프닝을 들으며 감탄했고, 숨어있는 명곡들을 내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하며 뿌듯해했다. 라디오 사연을 들으며 울고 웃으며 나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삶의 모양들을 알아갔다. 거기에 다정한 DJ는 몇 년 동안 까칠한 나를 조금씩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어느 날 <푸른 밤 종현입니다>의 DJ가 바뀐다는 소식을 접했고, 매일 만난 친구를 잃은 듯 펑펑 울며 나의 라디오도 점차 멀어져 갔다. 이후, 종종 라디오를 들었으나 꿈이었던 라디오 작가를 위해 들었을 뿐, 정이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내 DJ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난 후, 나는 오랫동안 라디오를 듣지 못했다. 동시에 라디오 작가의 꿈도 잃었다.

지금은 조금 나아져 가끔 예전처럼 <푸른 밤 종현입니다> 다시 듣기를 듣는다. 옥상달빛 언니들이 나와 연애 이야기를 하고, 영배오빠와 커피오빠는 여전히 웃기다. 슬퍼져서 울 때도 있었지만, 웃을 때가 더 많았다. 먼 길을 여행 갈 때도, 집에 있을 때도 나는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여전히 듣는다.

어쩌면 나는 라디오를 좋아하는 것보다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좋아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튼, 라디오』를 읽으며 조금씩 내 예전 꿈을 되돌아보는 듯했다. 라디오 시간에 맞추어 집에 들어오고, 엄마가 라디오를 사주고... 그런 추억을 다시 되살릴 수 있었다. 라디오 매체 하나로 추억이 무척이나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굴을 보지 않고도 응원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중요한 건 나는 지금 시 쓰기보다 오프닝을 쓰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하고 싶은지 고민이 많은 지금, 『아무튼, 라디오』가 방향을 잡아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라디오

이애월 지음
제철소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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