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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이 바빴던 2024년이 끝나고 나는 여행을 갈망했다. 특히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해외에 가고 싶다며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동시에 드는 생각은 나는 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가, 였다. 지금까지 '근래 갔던 이탈리아 여행이 좋아서'라고 답했지만, 이탈리아에게만 해당되는 답이었을 뿐, 여행을 가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으므로 마음 한편에 궁금증이 있었다.
이는 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확장되기도 했는데, 왜 나는 자꾸만 어디로 떠나고 싶어 하는가, 이다. 『여행의 이유』는 작가 김영하가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들을 찾는다. 근본적으로 여행하려는 욕구의 발현, 여행에서 '나'라는 존재의 변화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여행이 좋다고 대답했지만,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여행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일기가 아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김영하의 여행일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어떤 걸 했다는 단순한 나열들이 없다. 여행 성향과 같은 유행도 따라가지 않는다. 기어코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의 이유"를 끈질기게 쫓아간다.
-여행은 노바디
그는 여행을 '아무것도 아닌 자(노바디)'가 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어버리는 것. 우리는 지금 MBTI 검사를 하고, 친구들에게 나를 질문하면서 나를 누구인지 알려고 애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온전한 나를 여행지에 맡긴 채 즐긴다. 여행지에서 흔히 "어차피 나 모르잖아"라는 말을 하듯, 우리는 여행지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나가는 사람이 되었을 때의 희열이 있다. 나에게 벗어나 '개별성을 잃어버'릴 때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 나의 여행
김영하의 여행 이야기였지만, 나의 여행 이야기를 찾고 싶게 만든다. 요새 좋은 작품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답한다. 가끔 시나 소설에서 그들만의 세계가 있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느꼈던 적 있다. 김영하의 에세이는 나의 틈 만들어 자꾸만 나만의 답들을 찾아 나서게 한다.
- 그 틈에서 찾은 나의 답
그렇다면 나는 왜 여행을 가려고 애쓰는가. 여행을 가려는 바깥의 이유들보단 그저 아무 이유의 보탬도 없이 떠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말했듯, 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시간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나의 현재는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나는 지금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어디론가 떠나서 온전한 현재를 보내고 싶어 했던 것만 같다.
앞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날 때마다 김영하를 떠올릴 것이다. 김영하가 덧붙인 여행의 이유를 떠올리며 나 또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금세 떠나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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