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들이 총출동하여 절대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천히 곱씹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또한 작가님의 문체도 깊이 있고 매력적이다.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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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6
"형은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사람이 흔히 생명력이나 활력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아무 힘이나 대중없이 묶어 놓은 거 아닌가 하는...... 여기 애들이 학원, 학원, 학원만 쳇바퀴처럼 오가느라 걸어 다니는 시체 꼴이 됐다지만, 사실은 쳇바퀴를 굴리거나 시체가 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거든."
P. 106
"후회도 안 해. 후회하면 곧 항복하게 되거든."
P. 133
우혁에게서 천천히 고개를 돌린 어머니는 거실 텔레비전에 전원을 넣고 소파에 웅크려 앉았다. 봐야 할 방송이 있다기보다는, 일상의 한 구간을 흉내 냄으로써 무탈한 환상으로 침잠하려는 듯했다.
P. 198
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뉠 만합니다. 하나는 가진 사람이 더 많이 얻어내려 할 때 발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의 가지지 못한 사람이 삶을 동아줄처럼 붙들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전자와 후자를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거니와 후자를 전자보다 미워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둘은 종종 뒤섞입니다. 가진 사람의 위에는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있으며, 없는 자의 아래에는 더욱 없는 자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용서와 이해는 몹시도 어려운 일이 됩니다.
P. 369
오늘 소각장에서 불탈 사람과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를 즐길 사람은 사실상 무작위로 결정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그렇게 된다. 이 확률론적이고 결정론적인...... 미쳐 돌아가는...... 질서 정연한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