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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장편소설, The Good Son)의 표지 이미지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펴냄

피비린내와 수영장 냄새가 역하게 나는 책이다.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뇌리에 강렬히 박혀 있다. 그날 맡은 냄새는 아직도 연하게 나고 있다.
그 당시 어린 나는, 이 책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경악’ 이 아닌, ‘영감’에 가까웠다.

우리는 왜 공감을 할까?
인간처럼 공감에 특화된 생물도 없을 것이다.
점점 진화해서 공감능력이 발달한 거라면, 왜 그렇게 진화했을까?

냉정히 생각해본다면, 공감능력은 강점보다 단점이 많다.
공감으로 인한 냉철한 판단 부족이나, 주변의 사람들에 따라 감정이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몰라도, 심리학에서는 이 능력이 치명적인 단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떠올려 보자. 아사나 고독사 등, 의식주의 해결이 되지 않아 생기는 사망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보다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건, 자살이다.

공감 능력이 풍부하면, 우울해지는 순간이 더 많다. 이는 앞에서 말했듯 주변 사람, 그러니까 주변 사람의 기분에 따라 자신의 기분도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어떤가? 공감능력은 물론 죄책감도 현저히 결여된 모습을 보인다. 감정의 희노애락 또한 심할 정도로 느낄 수 없거나 아예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자살할 확률은 몇이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공동체에서 공감능력 결여는 치명적일지 몰라도, 개인에게는 오히려 공감능력이 발목을 잡는다. 개인의 생존엔 싸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훨씬 유리하다.

이 책은 이러한 공감능력의 결여를 주인공으로 세운 몇 안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생각들이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다.

종의 기원은, 앞에서 말한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책을 덮었을 때부터가 완전한 책‘ 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까지가 작가의 의도인 것이다.

종의 기원,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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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다르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주로 사춘기에,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우월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 작품은 그러한 사람들을 조소하는 듯, 누가 봐도 ‘비정상’인 소녀 ‘나쓰키’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나쓰키는 소위 말하는 ‘모두에게 버림받은 아이’이다. 그녀는 가정과 학교라는 집단 속에서 여러 학대와 성폭력을 당해야 했던 아이였다. 그런 나쓰키가 현실에서 도망치며 자신이 우주인이라고 믿는 것에 이르며 이야기는 본격적인 전개에 돌입한다. 나쓰키의 그러한 망상은 점점 심해지며, 이후 작품의 끝까지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한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나쓰키의 망상은 이야기의 끝까지 완화되지 않는다. 또한 작품 초반의, 나쓰키의 친척 ‘유우’와의 관계 때문에 더욱 악화된다. 그렇기에 나쓰키의 거의 모든 주변인물들은 그녀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의문점을 얻는다.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점을 말이다. 작품 중후반부에 나오는 나쓰키의 남편, 도오오미는 아내 나쓰키처럼 외계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도오오미는 ‘비정상’인가? 그는 아직 ‘인간’인데 말이다. 작품에서 나쓰키에게 결혼을 강요했던 주변인들과 그녀를 학대한 사람들은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이러한 의문점이 들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정상’은 무엇이며 ‘비정상’은 무엇인가. 이것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의문은 작품을 읽을때마다 계속된다. 질척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작가의 묘사는, 이러한 의문을 들게 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의문에 답을 직접 던져주지 않는다. 그저 이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

생각을 한번 해보자. ‘평범’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평소와 같은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궁금증이 있다. 평범한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을까? 일론 머스크와 같은 갑부는 호화스러운 하루가 평범하고,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한 끼도 제대로 못하는 나날이 평범하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진정한 ‘평범한 것’인가?
나의 생각은 ‘no’다. 갑부도,중산층도,빈곤한 사람도 ‘비정상’이다.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비정상’이라는 것이니까.
빨강도 명도와 채도 등의 차이가 있다. 모두 같은 빨강색이 아니다. 그저 ‘빨강’의 범주에 인위적으로 묶여있는 것이지, 사실은 수많은 색 중 하나에 불과하다.
사실상 모두가 비정상이라는 것은, 이런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그냥 ‘인격체’일 뿐, 정상도 비정상도 없다. 나쓰키 또한 그냥 ‘소녀’일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정말 좋아한다. 그 배경에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도 있고, 이 책을 읽은 이후에 시야가 넓어져 보이는 것도 있다.
작품 감상의 재미를 위해 줄거리를 대부분 생략했다. 이 책은 읽을 때 적나라한 묘사가 나오는 만큼, 전개 또한 파격적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할 수 없었다.
성폭력,살인,학대 등에 트라우마가 있는 독자들에게는 읽지 말것을 적극적으로 권고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 번 쯤 읽는 것을 추천한다.
장문의 글을 읽어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 저자 본인이 쓴 네이버 블로그에서 발췌 *

지구별 인간

무라타 사야카 지음
비채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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