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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직히 읽기 힘들었습니다. 꾸역꾸역 끝까지 읽기는 했는데, 영화로 치면 프랑스 예술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소설이 사건보다 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묘사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설명과 묘사라는 것이 현학적이고 복잡한 문장들이라서 읽기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것이 까뮈의 원래 문체인지 번역가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습니다.
2.
재해나 재앙이란 소재는, 극중 인물들이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어렵고 대비했다고 해도 인간이란 자연계에서 나약한 존재이므로 극적이지 않기가 어려운데, 유독 이 소설은 극적이라 할 만한 사건이 없고 오히려 소설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따분합니다. 오히려 극적인 사건은 페스트가 지나간 후 일어나지요. 이처럼 길고 지루한 저항은 극적이지 않은 대신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와의 싸움이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매일 같은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오늘의 확진자 수, 사망자 수를 확인하는 일에 점차 무뎌져 갑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정말 가까운 가족이나 동료 중에 확진자가 발생할 때까 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외출을 자제해야 하고, 낯선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고,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야하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이 일상이 불행인 동시에 다행이기도 한 셈이지요.
3.
누구 한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집중했던 인물은 타루였습니다. 특히 그가 의사 리유와 나누는 대화들은 작가의 생각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 다. 그는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리유도 그런 인물이지만 리유에게는 의사라는 직업적 의무와 사명감도 있는 반면에 타루는 그렇지 않습니다. 작품에서 그의 직업이 언급된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어쨌든 그는 보건대를 조직해서 이끌어야 할 의무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던 랑베르와 달리 보건대를 조직하고 의사와 도시를 돕죠. 타루가 사형 반대 활동을 하게 된 부분은 그가 인간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인물이며, 선의를 가장한 부조리에 반대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그의 죽음은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페스트와 죽음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는 않으며, 어떤 잘못에 대한 신의 벌도 아닐 겁니다.
4.
전염병 또는 다른 모습으로 선과 악을 가리지 않는 이런 재앙과 부조리함이 닥치는 순간, 옳고 그름이 불분명해지고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나 충돌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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