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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손기은 지음
드렁큰에디터 펴냄
어떤 알러지가 있거나 확고한 철학이 있어 음식을 가려 먹는 건 아니다. 한번 싫어지면, 한번 멀리하게 되면, 영원히 그런 채로 굳어버리는 성격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누군가에게 한번 실망하게 되면 그게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 일이 종종 있다. 하기 싫은 일은 어떻게든 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경우도 꽤 많다. 자동차에 하이패스를 설치하는 일, 고지서의 자동이체 계좌를 등록하는 일, 아이폰의 동기화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일처럼 명확한 이유는 없지만 어쩐지 꼭꼭 씹어 먹기 싫은, 굳이 그 허들을 뛰어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먹는 일이야말로 가장 투명한 유희이니, 개인의 성격이 덕지덕지 묻어날 수밖에. 앞으로 내 편식이 고쳐질 확률은 더욱 더 낮아질 듯하다.
식재료를 다루는 능력과 팀원들끼리 협업하는 능력을 모두 최고치로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을 최상으로 유지하고 모험과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셰프들은 어떤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걸까? 나는 휴대폰 카메라로 한 번, 입으로 두 번 정도 그 요리를 즐기는데, 셰프들은 얼마나 많은 겹의 노력을 투자해 이 요리를 만들었을까?
그래선지 나는 레스토랑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면 "오늘 좀 행복하네."라고 습관처럼 말한다. 집에서 먹을 때도 물론 행복하지만 다이닝을 경험하면 "와씨, 진짜 행복하네."가 된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좋은 사람들과 식사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윤택해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배달음식과 구독 서비스, 간편 냉동식품과 밀키트가 앞으로 우리의 식문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겠지만, 그리고 이미 내 식생활의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았지만, 레스토랑에서 느끼는 행복은 그 자체로 고유할 것이다.
최근엔 누군가와 레스토랑에서 무릎을 붙이고 앉아 "와, 행복하네."를 읊조려본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내 삶도 다시 여유를 찾고 레스토랑도 위기를 이겨내서 외식의 기쁨을 흠뻑 느껴보고 싶다.
적절한 설명으로 좋은 와인을 찾아주는 소믈리에, 유쾌함과 친절함의 비율을 최적으로 블렌딩한 서비스, 입 안에서 하나하나 춤추는 식재료를 모두 한꺼번에 경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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