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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존 스타인벡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존 스타인벡은 <에덴의 동쪽>이나 <분노의 포도>로 유명하다. 1900년대 미국의 상황을 무척이나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가로, 퓰리처 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사실주의 작가의 작품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회 모습을 보여줄 뿐 생각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그가 두껍지도, 서사가 긴 장편 소설도 아닌,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작품을 쓰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진주>다.



<진주>는 멕시코 원주민의 민담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본 이야기에 앞서 작가의 말인 듯 보이는 페이지에선, 작은 도시에 진주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고, 그 이야기에서 진주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잃어버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알려주며, 선과 악, 흑과 백 그 중간이 없는 무척이나 극과 극인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 "자기만의 의미를 찾아내고 자신의 삶을 거기에 빗대어 이해"(...7p)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설이라기보다는 민담이나 동화에 가깝다. 하지만 원주민의 움집 묘사가 끝나가나 싶게 아이가 전갈에 물리는 사고로부터, 아이를 의사에게 데려가는 장면, 의사가 치료비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치료를 거부하는 장면 등을 읽으며 독자는 곧 마음 속에 폭풍이 일게 된다.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악한 것을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그다음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욱 가관이다.



어릴 적부터 "권선징악"을 책으로 배우며 자라난 아이는, 청소년기를 거치며 사회의 부조리를 목격하게 된다. 그 부조리를 바라보며 거긱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잘 조율하며 조금이라도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통해 우리는 어른이라는 존재가 모두 선하거나 모두 악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적어도 선해지려고 노력하는 존재들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진주>에서 그런 존재는 없다.



키노와 후아나, 아기 코요티토는 완벽하게 선한 존재다. 그런 존재는 결국 행복해져야 한다는 논리처럼 이들이 "커다랗고 완벽한" 진주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원주민들을 제외한 존재들은 완벽한 악의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그 진주로써 앞으로 무언가를 아는 존재가 되고 싶고, 좋은 옷을 입고 싶고, 더 나은 삶을 바라는 키노는, 여러 고난 앞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끝도 극적이다. 읽는 내내 화가 나고 끔찍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이 동화는, 마지막에 더없는 슬픔과 그나마 선의 승리에 조금은 안심하게 된다.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이 동화를 통해 무엇을 얻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아마도 그동안 살아왔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함과 정의를 믿고 싶다. 한 명이라도 그런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변하겠지...하는 믿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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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존 스타인벡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읽고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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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어느 골목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7층으로 내려가면 지하라고는 믿기지 않는 거리가 펼쳐진다. 그 앞에 위치한 "귀신상점"! 간판은 으스스하지만 그 안에는 말과 고양이를 합쳐놓은 것 같은 동물 목요와 너무나 아름다워 눈길이 가는 여인이 있다. 각각의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이 상점에 도착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가져가게 될까?



사실 <전천당> 시리즈 이후 이런 비슷한 플롯의 이야기책들이 많이 늘어났다. 이런 이야기들에서 아이들은 하나같이 고민을 안고 있다. 그 고민이 정말 끝도 없는 걸 보면, 요즘 아이들은 정말 힘들게 살아가는구나! 싶다. 예전엔 아이들 사이에 큰 반목은 일어났던 것 같지 않다. 다들 그만그만하게 자라서 무리가 조금 나뉘기는 했지만 반 전체 아이들이 함께 잘 자라곤 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좀 다르다. 무리마다 성격이 다르고 그 무리에 끼지 못하면 바로 왕따를 당하는 신세다. 그 무리 안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학교에서조차 마음 놓고 즐겁게 생활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외모나 성적 등으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실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이들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것 같다. 최고가 되고 싶고 잘 보이고 싶다. 나를 "나"로서 세우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꾸 생각하다 보니 움츠러든다. <귀신 상점> 1편에서도 그런 아이들이 등장한다. 인싸가 되고 싶었던 단우는 귀신상점에서 여우눈알안경을 구입하지만 처음 맛보는 인기를 주체할 수 없어 실수를 저지르는가 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춤을 열심히 추던 동찬이는 우연히 악플을 본 후 더이상 춤을 출 수 없다. 하지만 귀신 상점의 '춤추는 빨간 양말'을 구입 후 그런 억압된 마음에서부터 벗어난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귀신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지만 어떤 아이는 실수를 저질러 반성하게 되고, 어떤 아이는 도움을 받아 자신감을 되찾는다. 항상 잘 풀리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무척 현실적이다.



<귀신 상점> 시리즈는 "귀신"이라는 우리나라 초자연적 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1편에서는 아직 귀신 상점 속 아름다운 여인에서부터 출발했지만 1편의 끝 쯤 예고된 다음 편에서는 뭔가 또다른 존재도 등장할 것처럼 여겨져 흥미롭다. 이왕이면 우리나라의 다양한 초자연적 인물들을 등장시켜 우리나라 만의 판타지 감성 동화 시리즈로 유명해지길 기대한다.

귀신상점 1

임정순 지음
열림원어린이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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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한때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며 일본 문화에 푹 빠져있던 때가 있다. 그 공부는 어느덧 번역으로 이어지게 됐고 그러다 보니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해졌다. 단순히 애니메이션을 보고, 영화를,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더 깊은 문화를 알아보겠다고 구매했던 책이 <국화와 칼>이다. 그때 당시에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가장 잘 기술한 책!이라고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렀고 이번에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새로운 <국화와 칼> 책이 출판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번 <국화와 칼>은 단순히 글에 그치지 않고 여러 자료들이 군데군데 함께 하고 있어서 기뻤다. 무엇보다 훨씬 가독성이 좋은 번역도 좋았다.



그럼에도 한 권을 읽는 데 2주 내내 걸렸다. 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다른 저명한 이가 이미 내놓았다고 해도 그것을 내것으로 소화시키는 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 또한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책은 전쟁 중의 일본인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런 행동을 보이게 된 이유를 역사적 사건에서부터 풀이한다. 그 역사가 고대부터일 필요는 없다. 대신 일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위계질서"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막부 시대와 계층에 따른 위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이지 유신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일본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변화해가는지를 설명한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사를 공부하며 등장하는 메이지 유신은 그저 '다함께 힘을 합쳐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정도로 이해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위에서부터 이루어진 혁명이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어느 나라든 그렇게 작정하고 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어 이루어진 혁명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것이 이들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일 테다. 이후로는 일본인의 정신 세계를 설명하며 무엇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지를 알려준다. 온이니, 기무니, 기리니 하지, 하는 것들을 읽어나가며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이 있지만 너무나 다른 국민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국화와 칼>은 놀랍게도 1944년 미국 국무부의 의뢰를 받아 쓴 정책 보고서를 바탕으로 다시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 보고서를 정책으로 맥아더 사령부가 적극 받아들여 일본 점령 정책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은 "국화를 사랑하고 예술가를 존경하는 심미적 성향과 칼을 숭배하고 사무라이에게 명예를 돌리는 폭력적 성향이 공존하는 문화"(...396P)라는 뜻으로 설명되지만 저자는 마지막 서술을 통해 철사와 틀, 가지치기가 없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국화와,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칼로 설명하며 이 시대에 맞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훌륭한 점은 자기중심적인 해석이 아닌, 문화상대주의로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의와 준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현대지성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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