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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함 (예소연 소설)의 표지 이미지

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문학동네 펴냄

여태껏 나는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이런 식이었구나. 이게 나였구나. 나는 사는 동안 내 이야기의 완벽한 '외부인'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흉내. 그것은 흉내뿐이었다.
사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완벽한 '내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내 서사에 완벽하게 가담한 인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단자 온전한 슬픔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해나는 해나대로 대진의 진정성을 폄훼했고 대진은 대진대로 해나의 삶을 대진의 세계에서 아주 쉬운 방식으로 추방했다.

언젠가 태수씨가 보는 유튜브 쇼츠를 함께 본 적이 있는데 유독 그런 내용이 많이 나왔다. 메갈이 어쩌고 한국 여자들이 어쩌고... 나는 태수씨에게 이런 것들을 정말 믿느나고 물었고 태수씨는 실제로 여자들이 그렇지 않으냐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나는 태수씨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왜냐하면 태수씨는 자식이라곤 나를 포함해 딸믄 둘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꾸 요즘 여자들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요즘 여자들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태수씨는 가까이 있는 나를 두고도 저멀리 있는 요즘 여자들을 보는 식이었다.

그래도 나는 태수씨를 사랑했다. 인셀은 사랑하지 못해도 그런 태수씨 정도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역사를 알면 그 사람을 쉬이 미워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소연의 소설에는 비슷한 여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계급적 유사함으로 인한 아비투스 때문이지만,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몰개성의 표지인 동시에 동일시의 표적이 된다. 문제적 행동을 수정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비난 섞인 충고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여성에게 내재화된 검열의 표현이자 여성 동성 사회에서 흔히 보이는 고질적인 형태의 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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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ukongu

초반 단편들은 공감성수치를 좀 견뎌야 함 마지막 2편은 아주 좋았음...

내가 알던 헌진은 자기효능감에 취해 살던 사람이었는데, 그때의 객기나 포부는 다 사라지고 지금은 오직 염세만이 남은 것 같았다. 사람 변하지 않는다는 말도 틀릴 때가 있구나.

딸내미도 딸도 아닌, '해원'. 엄마가 휴대폰에 저장해둔 내 연락처를 보자 미약하게 남아 있던 죄책감도, 애틋함도 전부 휘발된다. 그래, 이게 우리 모녀지. 수식조차 없는 밋밋한 관계. 전화를 끊는다. 내 휴대폰을 열어 '사랑하는 엄마'를 '엄마'로 바꾼 뒤에도 분은 가시지 않는다. 엄마는 모를 것이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큰 품을 들여 당신을 이해해보려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들이 나를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이런 것도 모르겠지. 요즈음의 나는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선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 반년간 생리가 끊겨 얼마 전 호르몬 검사를 했다는 것을. 또 엄마는…….

김일성이 죽던 해, 그해 더위는 지금도 피부로 느껴질 만큼 선연하다. 더위를 타지 않는 나도 꽝꽝 얼린 사골 팩을 이마며 목에 대어야 겨우 잠들 정도였으니까. 징그러울 만큼 무더운 날에 북녘의 지도자가 죽었다기에 일사병으로 죽은 것 아니냐고 여공들이 속닥이는 것도 기억난다. 그날의 기묘한 망연함도, 김일성이 죽었다는 속보에 공장 사람들 죄다 밥도 못 넘기고 망부석마냥 앉아 있었다.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지 몰랐으나, 다들 겁에 질려 있었다. 김일성이 죽었대. 조용히 웅성거리는 이들 틈에서 오직 상희 언니만 묵묵히 짠지를 집어먹고 국을 후룩후룩 떠먹고 있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암묵이 이어지면 결국 불의로 굳어지게 되는 거야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꺼낸 적 있었으니 다른 이들에게도 분명 같은 이야길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가 가방을 챙겨 나갈 때 그 뒤를 선뜻 따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움찔움찔 엉덩이만 들썩일 뿐 다들 반장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꼼짝도 못했다. 언니 몫은 남은 직공들에게 자연히 떠넘겨졌다. 그리고……. 지는 딸린 식구가 없으니까 저리 다 쉽지. 우리는 다르지 않나. 우리라고 입이 없느냐고. 원망은 저편이 아닌 이편으로 향했다. 애석하게도. 그런 와중에도 내가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던 건 나를 남모르게 챙겨주던 언니의 배려가 걸려서였다. 받은 것은 갚아야 한다는 일말의 부채감이 없었다면, 나 역시도 언니의 공명함이나 투지를 슬그머니 무시하고 지겹게 여겼을 게 분명했다.

반장의 빈정거림에 얼굴이 붉어졌다. 수치스럽거나 부끄러운 말이 아니었는데도 그 말이 다른 누구의 입에서 튀어나오니 수모가 되고 치욕이 되었다.

해설 중
그러나 도호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유수가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들은 "감수해야"하는 것으로 바뀐다. … 이 모든 일은 도호가 종종 가볍게 내뱉는 '너도 내가 돼봐' 같은 말로 '나'에게 자연스럽게 인계된다. 유수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짐이 되어 조금씩 무게를 더해간다.

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은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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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ukongu

정신아픔이일 때는 읽는 것을 추천하지 않음.

그때 니는 부영이 정원을 지켜주는 방식이 에전과 달라진 것 같디는 생각을 했다. 그게 부영이 변해서인지 정원이 변해서인지 아니면 부영과 정원의 거리가 달라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부영은 자신이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먼 곳을 항해 치달려가는 정원을 보며 알 수 없는 불길함에 훠싸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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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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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어. 반희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풍경이 괜찮지?

아니. 채운씨가 멋있다고.

내가 멋있다고?
채운은 웃음이 났다.

참, 별게 다. 지금 우리가 가는 데는 예전에 내가 촬영지 헌팅 다니다알게 된 집인데 말이 펜션이지 진짜 절간이 따로 없어.

멋있어.

또뭐가?
채운이 실실 웃었다.

이런 데도 다 알고 정말 멋있어. 채운씨

아, 그만해! 웃겨서 운전을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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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밤새 무슨 일 있었어? 말투도 막 바뀐 거 같아.
뭔 소리야? 반희가 채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 이거 너한테 배운건데.
와. 채운이 과장되게 손백을 쳤다. 내가 그렇게 덧있게 말한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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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생에게 경탄하는 동시에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대목이
이것이다.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렇게 금세 풀고 마는가.

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문학동네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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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심너울 지음
안전가옥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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