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조차 함께 바라볼 수 있었기에 서로를 구원할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서로를 구원했기 때문에 거의라는 개념조차 비슷해서 같은 것을 볼 수 있었을까?
연인들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을 만나 한쪽이 치유될 때 헤어지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서로를 닮음이 아픔이 될 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구원받고 싶은가 누군가가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같은 모양으로 세상을 바라봐주기를 원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