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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산해진미가 눈앞에 있더라도 배 속이 이미 음식물로 가득 찼다면 집어먹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날 피자집, 만화카페, 문구점, 낙지집에서 가족과 보낸 소소한 시간이 쌓이니 (행복을 소화하는 위장 크기가 작아서인지) 하루 행복 필요량을 홀쩍 넘어버렸고 그 포만감으로 인해 사진 올릴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굳이 타인에게 전시하고 인정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확실히 전보다 SNS 사용량이 확 줄었는데 어쩌면 내가 요즘 바람직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p.197)
임승수 작가님의 “방구석와인” 첫번째 이야기였던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를 읽고 내가 남긴 감상문에는 “나는 무엇을 그렇게 좋아하고 꾸준히 해왔는가 싶은 마음에 괜한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회의감은 이 책을 읽으며 다소의 도전의식으로 바뀌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이렇게 당당한 사랑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심 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님의 두번째 와인이야기를 읽는 지금- 3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디스크를 이겨내고 자전거에 풍덩 빠져있다. 봄, 여름, 가을-시간이 날때마다 자전거를 탔고, 추워진 지금은 실내자전거를 탄다. 그래서일까. 작가님의 두번째 와인이야기, 『와인과 페어링』을 읽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더 행복하다.
모르긴 몰라도,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를 쓸 때보다 『와인과 페어링』을 쓰는 작가님도 그렇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에는 와인을 향한 작가님의 사랑과 깊은 이해가 담겨 있었다면, 『와인과 페어링』에는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와인의 행복을, 맛을, 매력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본인이 충만하지 않고서야 무엇인가를 나눌 수 있겠는가. 『와인과 페어링』은 그만큼 풍만함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맥주를 좋아하는 가벼운 사람이지만, 작가님 덕분에 종종 기분을 내기 위해 와인을 만나곤 했다. 아마 많은 이들이 『와인과 페어링』을 읽고나면, 나처럼 와인에 대해 부담감도 줄이고, 수많은 음식과 페어링하며 더 친밀하고 가까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책에서는 특히 애호박전이나 회처럼 명확한 짝꿍(?)이 있는 녀석들과도 페어링을 시도하시는 것을 보며 우리가 와인을 너무 멀리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졌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 전을 막걸리가 아닌 와인과 마셔보며 낯선 것에서 오는 생경함과 두근거림, 익숙함을 벗어나는 묘한 재미를 동시에 느꼈더랬다. 『와인과 페어링』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낯선 것을 익숙함과 연결짓는 편안함. 타인(혹은 대중)의 취향으로 나에게도 고착되어 있던 습관과의 헤어짐. 단순히 술 하나만 놓고도 우리는 타인의 취향에 너무 쉬이 길들여지는 것은 아닌지, 이제라도 나만의 취향들을 쌓아가면 어떨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임승수 작가님은 나에게 또 하나의 다짐을 안겨주셨다.
『와인과 페어링』의 두번째 매력은 와인을 집에서 즐기는 방법을 정말 아낌없이 담아주셨다는 것. 폼나는 와인바에서 즐기는 와인이 좋지 않을리 없지만은, 집에서- 혹은 여행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와인도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 『와인과 페어링』에 담긴 노하우와 여러 음식과의 페어링을 읽으며 그동안 와인에 대해 품었던 선입견이나 부담스러움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더불어 새해에는 좋은 사람들과 와인을 한 잔씩 나누는 시간을 더욱 많이 가지리라고 생각해보기도 했고.
그러나 『와인과 페어링』의 가장 멋진 점은 문장 가득 느껴지는 편안함이다. 어쩌면 작가님은 와인과 음식만을 페어링한 게 아니라, 삶과 와인을, 삶과 “음식을 먹는 시간”을 페어링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멋진 와인에다가 맛난 음식을 곁들일 때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건만 그 황홀한 순간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비타협적 마감 시간과 함께 나의 어깨를 짓누른다.(p.188)이라고 기록하셨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먹은 일화처럼- 작가님은 삶에 그 소소한 행복들을 잘 페어링하신 것 같다. 때때로 문장에서도 그런 감정이 느껴져, 책을 읽는 동안 나 또한 자꾸만 감사해졌다.
여전히 나는 와인을 잘 모른다.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리. 나는 어느 곳에서건 “제가 와인을 잘 몰라서 그런데, 이 음식에 어울릴 와인을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을 수 있는 솔직한 사람아닌가. (그래서 더 행복하기도 하고.) 대신 나 역시- 『와인과 페어링』을 읽는 내내 느꼈던 편안함처럼, 내가 잘 나눌 수 있는 것을 부지런히 나누는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작가님이 나눠주신 풍족한 와인을 마음에 잘 담아두고, 나도 그런 풍족한 사람을 향해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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