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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보이지 않는 (2024 뉴베리 대상 수상작)의 표지 이미지

눈과 보이지 않는

데이브 에거스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너구리들은 항상 이런 식이다. 늘 자기들이 더 나은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진짜 나은 계획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른 동물들이 계획을 설명할 때 눈을 가늘게 뜨고 슬쩍 비웃는 게 전부다.
그리고 결국은 다른 동물들의 계획에 따른다. 너구리들한테는 자기들 스스로 세운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늘 있는 일이지만 깊이 생각하다 보면 분통이 터진다.

p142


계획에 몰두한 덕분에 나는 내가 처한 난관을 잊을 수 있었고, 버트런드가 말한 사명감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종일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 생물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이란 걸 지각 있는 동물이라면 누구든 안다. 마음속에 고민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고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해방의 본질이다. 즉, 자유란 우리가 자신을 잊는 순간에 시작 되는 것이다.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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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나 지금이나 갈매기들의 이런 행동은 인정할 수가 없다. 갈매기들은 자기들이 코다라고 부르는 행동이 명예롭고 영웅적이며 희생적인 행위라 여기지만, 내 눈에는 자기 멋대 로인데다가 한심하고 불필요하며 우울하기만 한 것으로 보였다. 늙거나, 다치거나, 병에 걸려 더는 날 수 없게 된 갈매기는 마지막 비행 날짜와 장소를 정한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하는 마지막 비행이 바로 코다다.
심한 상처를 입어 날개를 제대로 퍼덕이지도 못하는 상태라도 마지막 비행은 어떻게든 해낸다. 그들은 바다로 가서 온 힘을 다해 높이 날아오르 고, 할 수 있다면 크게 원을 그린 뒤, 해님의 따스함 그러니까 신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는 순간 모든 걸 놓아 버린다. 비행을 멈추고 그대로 나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져 중력과 바다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수면 위로 떨어지면 거기서 끝이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다.
루이스가 지금 하려는 것이 그 일이었다. 루이스는 더 높이 날았고, 루이스가 그리는 타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울했지만, 버트런드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다.
〰️
버트런드는 내 형제고,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웬만한 일에 관해서는 생각이 같았지만, 코다에 열을 올리는 것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근사하다고? 아니다. 영웅적이라고? 그럴 리가. 비행 능력을 잃는 것이 왜 갈매기가 더는 살아갈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걸까? 날 수 없다면 걸어 다니면 된다. 그들은 아주 빠르게 잘 걷는다. 또 먹이를 찾고 대화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의 대부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날지 못하는 것이 체면을 잃는 일이며, 자기뿐 아니라 자기 종족을 부끄럽게 하는 수치스러운 일이라 여긴다. 날지 못하는 것이 불명예라 생각하기에 코다라는 끔찍한 행위를 백만 년 동안이나 해 온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p131-132

눈과 보이지 않는

데이브 에거스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읽고있어요
1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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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onsoonjin

"조용히 떠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습니 까?" 나는 그렇게 물었다. 내 속에서 나 자신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라, 너희,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여! 우리의 살과 피로 새로운 만리장성을 건설하리라!'
"꼭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 조용히 문제를 풀고 그대로 머 무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잘못된 게 아니듯이.
〰️ "참는 것이 자네에게는 문제가 되는 것 같군.“
"전에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과장님.“ 바로 그 순간 속으로는 영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노래하고 있었다. '울-분!' 갑자기 중국어로 그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p104-155

울분

필립 로스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고있어요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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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문제는 질문을 잘못 던질 때 생깁니다. 이유가 없는 일에 '왜'를 묻거나, ‘왜'를 물어야 할 일에 ’어떻게'를 질문할 때 문제는 꼬이고 커져만 가죠. "왜 가뒀냐"가 아니라 "왜 풀어줬냐"를 물어야 했을 영화 〈올드보이〉의 경우처럼, 질문의 방향이 잘못되어 고통이 커지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혼돈 속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확히 매번 꿰뚫어 질문하거나, 질문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기만 할 수 있겠어요. 수긍하기 어려운 뉴스가 매일같이 우리 귓가에 쉴새 없이 들려오는데 어떻게 불쑥 질문이라도 내뱉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물음이 답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쩌면 질문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에 직면한 인간이 내뱉은 작은 신음소리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p181 신음같은 질문

밤은 책이다

이동진 지음
예담 펴냄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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