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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문학동네 펴냄

정신아픔이일 때는 읽는 것을 추천하지 않음.

그때 니는 부영이 정원을 지켜주는 방식이 에전과 달라진 것 같디는 생각을 했다. 그게 부영이 변해서인지 정원이 변해서인지 아니면 부영과 정원의 거리가 달라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부영은 자신이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먼 곳을 항해 치달려가는 정원을 보며 알 수 없는 불길함에 훠싸였는지도 모르겠다.

-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

멋있어. 반희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풍경이 괜찮지?

아니. 채운씨가 멋있다고.

내가 멋있다고?
채운은 웃음이 났다.

참, 별게 다. 지금 우리가 가는 데는 예전에 내가 촬영지 헌팅 다니다알게 된 집인데 말이 펜션이지 진짜 절간이 따로 없어.

멋있어.

또뭐가?
채운이 실실 웃었다.

이런 데도 다 알고 정말 멋있어. 채운씨

아, 그만해! 웃겨서 운전을 못하겠어.

-

엄마. 밤새 무슨 일 있었어? 말투도 막 바뀐 거 같아.
뭔 소리야? 반희가 채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 이거 너한테 배운건데.
와. 채운이 과장되게 손백을 쳤다. 내가 그렇게 덧있게 말한다
고?

-

내가 동생에게 경탄하는 동시에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대목이
이것이다.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렇게 금세 풀고 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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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나는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이런 식이었구나. 이게 나였구나. 나는 사는 동안 내 이야기의 완벽한 '외부인'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흉내. 그것은 흉내뿐이었다.
사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완벽한 '내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내 서사에 완벽하게 가담한 인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단자 온전한 슬픔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해나는 해나대로 대진의 진정성을 폄훼했고 대진은 대진대로 해나의 삶을 대진의 세계에서 아주 쉬운 방식으로 추방했다.

언젠가 태수씨가 보는 유튜브 쇼츠를 함께 본 적이 있는데 유독 그런 내용이 많이 나왔다. 메갈이 어쩌고 한국 여자들이 어쩌고... 나는 태수씨에게 이런 것들을 정말 믿느나고 물었고 태수씨는 실제로 여자들이 그렇지 않으냐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나는 태수씨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왜냐하면 태수씨는 자식이라곤 나를 포함해 딸믄 둘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꾸 요즘 여자들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요즘 여자들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태수씨는 가까이 있는 나를 두고도 저멀리 있는 요즘 여자들을 보는 식이었다.

그래도 나는 태수씨를 사랑했다. 인셀은 사랑하지 못해도 그런 태수씨 정도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역사를 알면 그 사람을 쉬이 미워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소연의 소설에는 비슷한 여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계급적 유사함으로 인한 아비투스 때문이지만,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몰개성의 표지인 동시에 동일시의 표적이 된다. 문제적 행동을 수정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비난 섞인 충고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여성에게 내재화된 검열의 표현이자 여성 동성 사회에서 흔히 보이는 고질적인 형태의 애정이다.

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문학동네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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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심너울 지음
안전가옥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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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wandukongu

창밖에서 귀로 공부를 쫓아갈 때 몰래 책을 베꺼줬던 것은 다섯째였다. 너와 나는 기의 같지, 하고 속삭이면서.... 다섯 째에게 빚이 있었다. 다섯째로 살면 다섯째를 살린 것 같을까? (중략) 먹보랏빛 허공을 바라보고 있자니, 죽은 자들이 가까이 있
는 것처럼 느껴졌다. 죽은 자은이 서늘한 손으로 살아 있는 자은의 손등을 두드려주는 것만 같았다. 원래 말이 많은 형제는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로 거의 같았어? 한쪽은 차분했고 한쪽
은 나무칼을 쥔 채 외쳤는데 우리가 거의 같을 리가 있었어? 죽은 형제는 대답이 없었다.

-

젊고 총기 님치는 독살자의 얼굴은, 탄로가 나고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그악스러운 본색을 드러낼 줄 알았건만 그대로였다.

-

칼을 휘두르고 거짓 갑옷으로 그것을 맞은 두 사람이 단출하게 남았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마음은 보답받을 것인가? 결국 한 사람만 남겨질 것인가? 어느 쪽이 되든 옥화가 행복했으면 했다. 의지가 있고, 성질머리가 있고, 미련한
구석도 있는 다시 만날 일 없을 그 여자가.

-

"아아아아."

인곤은 베개처럼 완벽한 돌에 머리를 없고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라도 있을 수 있겠어."

그 말에 자은이 웃었다.

"해골이 되어서도 편안할 거야.

"자고 많은 물에 조금씩 조금석 씻겨 사라지는 거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개의치 않으며, 눈감고 세
월을 흘려보낸다? 그보다 더 감미로운 일은 없겠군.

-

"다 저지르고 말해줬어요. 엉엉 울더니만 어쨌든 베를 열심
히 짰죠."


마음이 약한지 강한지 알 수 없는 여자였다. 친우를 위해 육백 년 전통의 겨루기를 방해할 만큼 강하면서도 천을 망칠 만큼 못돼먹진 않았다. 울면서 죄를 고백하면서도 친우는 끝까지 보호하려고 했다. 어느 한쪽이라면 마음이 나았을까. 착잡해진 세 사람은 바로 소판 댁으로 향했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정세랑 지음
문학동네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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