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성별, 소득, 이념, 지역 간 양극화. 양극화가 일어나지 않는 부분이 있을까 싶을만큼 사회가 양극화 되어가고 있다. 사회는 협력하고 이해해야 유지된다는 것을 점점 잊어가고 있다. 대립과 혐오가 아닌 이해가 너무나도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무엇에 의해 서로 대립하고 혐오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은 시민의 양극화와 그로 인한 분노를 자양분 삼을 집단의 교묘한 가스라이팅일 것이다. 협력, 이해. 단어는 거창하지만 실천하기는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알면 사랑한다. 혐오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집단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본다면 이 양극화 사회가 조금은 유연해지지 않을까 싶다. 하아...쉽지 않아..."이념과 이념이 대립하는 시대에서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 시대로" 브래디 미카코 작가님은 사랑.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브래디 미카코 지음
사계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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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의 세계를 여행하게 된 인간 관찰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극은 인간존재와 무섭게 닮아 있는 곤충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들을 보여 주며 진행된다. 무가치한 똥에 일생의 욕망을 투자하는 쇠똥구리들과 타자의 목숨을 빨아 부와 권력을 누리는 피범벅의 맵시벌이 있는가 하면, 무책임한 성적 놀음으로 청춘을 탕진하고 문학과 시인을 패러디하며 능욕하는 나비들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과학으로 무장하고 종족 학살을 위해 구령에 맞춰 전진하는 전쟁 중독자 개미들이 있다. 차페크의 벌레들은 혐오스럽고 치졸하지만 속속들이 인간적이다. 그들의 욕망과 잔악한 악행들은 곧 흉측하게 일그러진 인류의 초상이다. 다만 카프카와 달리 차페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조리 속에서 위기를 맞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찬란히 불타고 삶의 끝맺는 하루살이들의 아름다움과 같다는, 휘발성 그 자체의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한다. 금세 사그라지는 것, 너무나 힘없이 짓밟히고 피 흘리는 것, 의미를 찾기에는 너무나 짧고 어리석은 존재, 이 유한성과 한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을 흥미롭고 신비스럽게 한다. “
곤충 극장
카렐 차페크 (지은이), 김선형 (옮긴이) 지음
열린책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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