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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창비 펴냄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또 다른 폭력을 행사했다”

단순히 ‘꿈’ 하나 때문에 ‘채식’을 자처하면서
주변인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 인물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나 역시 다를 것 없는 내면에 폭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작가님이 만들어 낸 ‘영혜’라는 인물에게
시선과 편견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허구적인 인물인데도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제3자들의 시선을 통해 주로 묘사가 되며 주도적인 위치를 갖지 못한다.
이것 역시 폭력적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사사로운 폭력에 길들여졌으며
폭력=보통의, 정상적인이 되었을까.

정확하게 활자로 찍혀있는 채식의 이유에도
초반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는데,
이러한 말들을 직접 듣는다면 더욱 심하겠지?

어쩌면 말이다.

그러한 시선에 익숙해지고 당연시하게 여기는 것 때문일 수 있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따라오는 폭력이 무서워서
그러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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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차

@paranoia

마지막, 이 책을 본 독자들이라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알 것이다.

아무튼 그 말을 위해 쌓아놓은 빌드업은 상당히 두꺼운데,
그렇게까지 또 중요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기엔
너무 ‘기다렸지??’하고 이때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듯한 느낌이 강렬했고,

또 그것을 위해 준비한 것들 치고는 앞부분들이 대단했다.

관념을 깨는 것은 좋았으나, 그 관념을 빼고서 이 책을 본다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한 이야기.

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은이) 지음
엘릭시르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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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차

@paranoia

“첫 페이지와 끝 페이지의 다른 무게감”

그날의 잔혹하고 눈물 쏟던 역사의 한 부분을
200페이지를 통해 완전히 실감하리란 어렵지만,

겪어보지 못해 온전히 느끼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쓰라림을 준다면 그때 그 자리에 서 있던
많은 이들의 고통은 어땠을까.

너무 고통스럽고 아프면 오히려 감각이 없어지고
둔해진다고 하던데 어째서 이 이야기는 끊임없이
타들어가는 고통과 속 쓰림을 만드는가.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음에도 넘기기 시작한
팔랑이는 종이 한 장들은 어느 순간부터 짓눌리는 감정과 함께 무거워지기 시작하여 마지막 페이지는 아주 천천히 넘겼다.

흘린 피 냄새에 뒤섞인 눈물과 땀 냄새가 코 끝에서 느껴진다면 이제서야 나는 그날의 아픔에 반의반에 왔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느낄 수도 없고, 느껴서도 안될 것들이기에.

어떻게 위로와 추모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뭘 하든 실례인 것 같아서...
나 스스로에게 ‘네가 뭘 알아’라는 말을 반복하게 되어서...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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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차

@paranoia

“차가운 과학적 원인을 시선과 이해로 따듯하게 덮다”

뇌의 신경학적 부분이 손상되었을 때 보이는 다양한 증상들.

우리는 그러한 손상을 통해 일상적인 사람들과 다른
행동 양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보면 불편해하거나
반대로는 신기해한다.

‘올리버 색스’라는 신경학 박사는 이러한 질병에
대해서만 단순히 호기심을 가지고 그들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인간다움’을 바라보고 배경이나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며 ‘정체성’에 대해서 본질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이러한 것이 없었다면, 이 책은 그저 신경학적 손상에 의한 질병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기록이 되어버리는
조금은 차가운 책이 될 수 있었겠으나

‘올리버 색스’의 따듯함과 머무르는 시선 덕분에
따듯하고 감동적인 책이 될 수 있었다.

‘영혼’이라는 과학적 용어가 아닌 단어를 최대한 적게
사용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인간’의 정체성의
무언가인 듯하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알마 펴냄

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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