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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동동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당신을 위한)의 표지 이미지

돼지고기 동동

조경규 (지은이) 지음
송송책방 펴냄

맛있다 이거. 특별할 건 없지만,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어.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맛이야. 그래, 내가 늘 요리를 하며 딸아이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사실은 당신의 맛있는 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야. 내 요리를 빛내주던 당신! 티나지 않게 늘 우리 가족을 뒷받침해주며 애써온 당신!
잘해야 본전이고, 잠시라도 소홀히하면 금방 티나는 집안살림. 하지만 내 옷장 서랍 속엔 깨끗한 양말과 속옷이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1.5L 병 가득 잘 우려낸 옥수수차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준비되어 있었고, 화장실의 휴지나 타월도 떨어진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딱히 보람도 없는 이런 일을 한마디 불평도 없이 언제나 따스한 마소로 해준 당신.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진 화려한 요리가 아니라, 늘 하이얀 쌀밥 같았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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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죽여 버린 것일까.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는 삶은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 아닐까. 이래서는 안 된다고 느끼면서도 지금 상황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자기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프레디의 목소리와 나 자신이 겹쳐지는 것만 같아 고개를 내저었다.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나는 이런 생활밖에 할 수 없다.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일이 없으면 매일 할 일도 없다. 그래서 회사에 나간다. 하지만, 일을 해서 얻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조금이라도 무언가에 도움을 주고 싶다.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 형태로 만들고 싶다. 일은 그런 욕구를 충족해 준다. 눈앞에 막연히 있는 시간에 일로써 다소나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약을 끊으면 괴롭고, 한 번 실패하면 고생이 더 심하다. 인터넷에서 그런 소회를 몇 번이나 보았다. 과연 내가 약을 줄일 수 있을까.
"괴롭다는 얘기를 흔히 듣는데......"
"누가 그러는데요?"
"그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그렇겠죠.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보통 목소리가 큰 사람이 흘리는 경우가 많죠. 야마조에 씨를 아는 사람의 의견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다음 진료 날짜는 한 달 후가 아니라 일주일 후로 잡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바로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의사는 평소의 담담한 말투로 돌아와 접수창구에서 다음 진료 날짜를 예약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약을 줄이면 발작 횟수도, 불안을 느끼는 순간도 늘지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면 두렵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것에 지레 겁을 먹고 한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다.

새벽의 모든

세오 마이코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 지음
왼쪽주머니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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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아니지. 흔한 일이라고 해도 가미노에게는 중요한 일이잖아. 그런 식으로 따지면 모든 생물은 죽으니까 언제 죽어도 별수 없다는 결론이 나버린다고. 흔한 일이라는 말로 그냥 넘어가면 안 돼."

마리아가 걱정돼 앞뒤 가리지 않고 호텔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평소 나나오의 좌우명이었다.
물론 차분히 행동한들 불운은 찾아온다. 다만 급하게 행동했을 때는 "급하게 행동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 하고 반성할 여지가 생긴다. 잘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라면 미련이 남지 않는다. "운이 나빴을 뿐이야." 하고 한탄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런 사고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남과 비교하는 것 외에는 행복을 얻을 줄 모르는 인간인 거지." 소다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가미노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고 뭐고 그 말 그대로의 의미야. 전에 콜라 씨에게 '남을 질투하거나 부러워한 적은 없어요?' 하고 물어봤어. 난 늘 그랬거든. 대활약하는 스포츠 선수를 보면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부러워하거나, 저 사람처럼은 될 수 없다고 침울해하곤 했지. 그래서 콜라 씨도 똑같을 둘 알았는데 '없어. 전혀 없어.' 하고 재깍 대답하더라고."
깜짝 놀란 소다가 "부러워하지 않는다고요?" 하고 목소리를 높이자 콜라는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매화나무가 옆에 있는 사과나무를 신경 써서 어쩌자는 거야?" 하고 대꾸했다고 한다. "매화나무는 매화꽃을 피우면 돼.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으면 그만이고. 장미꽃과 비교한들 아무 의미도 없어."라고.

트리플 세븐

이사카 고타로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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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seomoon

몇 번을 겪든 절대 무감각해질 수 없는 일들이 있다고 확신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런 말뿐인 다짐 뒤에서 타인의 죽음에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둔감해졌다. 에피네프가 등장하고 열 달간 전 세계에서 네 명 중 한 명이 죽었다. 4인 가족이라면 그중 하나. 여덟 명 친구 모임이라면 그중 두 명. 마흔 명으로 이루어진 학급에선 열 명이 사라졌다. 이제 누군가의 죽음이란 반드시 울거나 오랫동안 슬퍼해야만 할 일이 아니었다. 죽음의 의미나 무게가 달라져서가 아니었다. 달라진 건 우리였다. 그렇게 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카베의 죽음에 의미를 찾아주는 일 말곤 없었다.

"진행자랑 가벼운 분위기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더라고. 그러더니 뜬금없이 내 이름을 말하면서 날 좋아했는데 졸업이 몇 달밖에 남지 않은 시기여서 고백하지 못했다고. 그게 너무 후회된다고. 만약 방송을 보게 된다면 꼭 연락하고 싶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놀랐겠네요."
"그럼."
리엔 선배가 웃었다.
"내가 몇 년 동안이나 좋아했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너도 알지는 모르겠는데, 사귀지도 않고 한 사람을 몇 년이나 혼자 좋아한다는 건 거의 병이나 다름없는 거야. 감정이라는 건 원래 변질되고 바뀌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 계기가 없으니까 변하지도 않고, 내심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사라지지도 않아서 그 모습 그대로 냉동 상태로 영영 보존되거든. 그러다 계기가 있어서 그 냉동실 문이 조금 열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굴러 나와서... 또 병이 도져버리는 거지."
"그게 병인가요?"
"병이지."
선배가 딱 잘라 말했다.
"잘못된 거잖아.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내가 열아홉 살 때의 나와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게. 생활도 사고방식도 가치관도 달라졌는데, 그 당시 감정의 논리만 예외로 한다는 게."

"나는 왜 그렇게 늘 불안했을까? 계속 같이 있을 줄 알았던 오빠가 나가고 혼자가 돼서? 세상이랑 사람이 무서워서? 에피네프에 죽을까봐? 아니면 그냥 어리고 젊을 땐 누구나 다 그런 거니까?"
내가 아무런 대꾸도 못 하자, 페이가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한 번 죽어보니까, 인생도 없고 미래도 없는 상태로 찬찬히 돌아보니까 조금은 알겠더라고. 나는 앞날만 생각했기 때문에 불안했던 거야. 앞으로 올 날들이 지금보다 나을 거라 생각해서. 어른이 돼서 보육원을 나가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 오빠를 찾을 수 있겠지, 언젠가는 행복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현재를 마주 보지 않아서.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몰라서. 그래서 불안했던 거야. 그래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 줄 알았어.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게."

스파이라

김아인 지음
허블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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