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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김초엽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파견자들

김초엽 지음
퍼블리온 펴냄

생물학이나 미생물학을 배우다보면 꼭 한 번은 드는 생각이 있다. 세포 하나하나, 몸 속의 균이나 바이러스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이라면 인간은 하나의 개체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의 심장이나 숨이 멈춘 후에도 살아있는 세포와 미생물들이 남아있다면 그 인간 개체는 죽었다고 할 수 있는가? 사실 생명이나 존재라는 개념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모호하다. 그런데 만약 그 개념과 불완전한 경계를 감각적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은 그것에 대한 무수한 상상력 답안들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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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초엽은 여전히 소통과 인지의 방식에서 낯선 것들을 시도한다. 주인공은 역시나 그 낯선 것들을 먼저 받아들인 누군가다. 수용 과정이 자의였든, 타의였든, 인지의 변화는 세계를 바꾸고 삶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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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직접 보고 듣는 것들에 너무 의지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감각하지 못하는 세계가 이미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나는 너무 눈과 귀를 닫고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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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나 허블 출판사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었던 까닭에 책 표지만 보고 연애소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뜻한 파스텔톤의 표지에 여러 개의 달이 떠 있는 것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발견했지요. 작가가 화학을 전공했다는 것도 나중에 보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흥미로운 장르 작가를 발견하게 되었네요.

SF라는 장르는 광선검이나 우주선, 복잡한 시간여행, 외계와의 전쟁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단편소설들은 그냥 사람들에 대한 잔잔한 이야기라서 좋았어요. 기술이 발달하고 가치관이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이나 인간성에 대한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을 테니까요. 읽으면서 <당신 인생의 이야기>, <숨>의 작가 테드 창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테드 창의 소설에 비하면 김초엽의 작품이 훨씬 읽기 편합니다. 미래의 과학기술이나 원리, 그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를 정교하게 묘사하려고 하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와 심리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소설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수학적 과학적으로 얼마나 정확하고 앞뒤가 맞는지 분석할 필요 없이 세상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이 신선하고 즐거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모성애에 대한 관점(관내분실), 선택된 여성 또는 소수에게 향하는 사회적 편견(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이 마음에 들었고, 아마도 그것은 여성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주인공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허블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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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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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직히 읽기 힘들었습니다. 꾸역꾸역 끝까지 읽기는 했는데, 영화로 치면 프랑스 예술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소설이 사건보다 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묘사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설명과 묘사라는 것이 현학적이고 복잡한 문장들이라서 읽기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것이 까뮈의 원래 문체인지 번역가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습니다.

2.
재해나 재앙이란 소재는, 극중 인물들이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어렵고 대비했다고 해도 인간이란 자연계에서 나약한 존재이므로 극적이지 않기가 어려운데, 유독 이 소설은 극적이라 할 만한 사건이 없고 오히려 소설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따분합니다. 오히려 극적인 사건은 페스트가 지나간 후 일어나지요. 이처럼 길고 지루한 저항은 극적이지 않은 대신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와의 싸움이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매일 같은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오늘의 확진자 수, 사망자 수를 확인하는 일에 점차 무뎌져 갑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정말 가까운 가족이나 동료 중에 확진자가 발생할 때까 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외출을 자제해야 하고, 낯선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고,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야하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이 일상이 불행인 동시에 다행이기도 한 셈이지요.

3.
누구 한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집중했던 인물은 타루였습니다. 특히 그가 의사 리유와 나누는 대화들은 작가의 생각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 다. 그는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리유도 그런 인물이지만 리유에게는 의사라는 직업적 의무와 사명감도 있는 반면에 타루는 그렇지 않습니다. 작품에서 그의 직업이 언급된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어쨌든 그는 보건대를 조직해서 이끌어야 할 의무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던 랑베르와 달리 보건대를 조직하고 의사와 도시를 돕죠. 타루가 사형 반대 활동을 하게 된 부분은 그가 인간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인물이며, 선의를 가장한 부조리에 반대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그의 죽음은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페스트와 죽음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는 않으며, 어떤 잘못에 대한 신의 벌도 아닐 겁니다.

4.
전염병 또는 다른 모습으로 선과 악을 가리지 않는 이런 재앙과 부조리함이 닥치는 순간, 옳고 그름이 불분명해지고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나 충돌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열린책들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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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그 와중에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그러면서도 사랑이 증오의 다른 이름이 아닌지 생각했다.

그것이 열병 같던 낯선 감정이거나 삶의 추한 모습을 다 드러내는 지독한 인연이라도 우리는 그것들을 굳이 사랑이라고 부를 이유들을 찾아내곤 하는 것이다. 치사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일이다. 사랑이 세상을 구원이라도 할 것처럼 다들 떠들어대지만 현실은 시궁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걸 굳이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어하고, 또 그게 말랑하고 보드랍고 빛나지 않는다고 애틋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면서, 나 역시도 또 그 와중에 사랑이 필요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젠장...

첫사랑

성석제 (지은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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