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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세계문학전집 61)의 표지 이미지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민음사 펴냄

대단한 도입을 가졌다 했다. 그런 평을 듣는 작품이 제법 있지만 솔직히 동의한 적은 없었다. 유명세가 평범한 문장조차 유명하게 하였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명문이었다. 그것도 대단한. 첫 문장은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있고, 주인공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꽤나 노력을 들여 옮겨왔음을 알린다. 처음이 수평이었다면 다음은 수직, 밑바닥부터 것도 밤의 밑바닥부터 제 색을 발한다. 다음 문장에 이르러 이야기는 본격 막을 올린다. 이보다 완전한 세 문장이 또 있을까. 덜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완전한 균형. 이를 가리켜 일본문학의 정수라 한 말이 틀리지가 않다.

그러나 뒤는 오로지 이 세 문장이 쌓은 공으로 과대평가되었다. 그럴 법한 일이다. 나 또한 이 허랑한 소설을 첫 세 문장을 쓴 이의 작품이라 믿을 수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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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걸어온 길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대하는 시각과 떨어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기자 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기자 또한 길러내는 것이다.

저널리즘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에겐 실망이 따를 수도 있겠다. 다루고 있는 많은 주제가 어떤 관점에선 흔한 것이고, 다루는 시각 또한 새롭지는 않다. 인용한 여러 서적을 고려하면 과연 이 정도 문제의식을 위하여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가치가 있는가, 그와 같은 쉬운 평가가 나올 법도 하다.

왜 김애란이 '추천의 말'에서 다 아는 말을 전하는 일의 미덕을 거론했는지 알겠다. 내게는 아니었지만 다른 누구에겐 좋은 독서일 수도 있으리라고, 그런 생각에 이르렀으니.

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낮은산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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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표현하는 김나리의 글 가운데서 한국의 오늘이 읽힌다. 독일에선 자연스러운 것이 한국에선 그렇지 않을 때다.

글로써 뒤따른 저자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부모의 이혼, 십대 학창 시절부터 홀로 꾸려나가야 했던 삶, 가난이 가난인 줄도 몰랐던 오랜 시간들, 다른 성적 지향으로 고통 받아야 했던 나날까지가 버겁게 다가선다.

그러나 그는 제 고통을 등짝에 진 채로 한걸음씩 나아가 오늘에 이르렀다. 그의 글에선 제 삶을 지탱한 어른만의 기개가, 끝나지 않은 삶을 기꺼이 마주하는 이의 진취성이 읽힌다. 그리하여 나는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다는 김나리의 말에 공감한다. 납작하지 않다. 이런 삶은 납작할 수가 없다.

흔해빠진 납작한 인간들 사이에서 납작하지 않은 인간이 저기 하나쯤 더 있구나. 그런 감상만으로도, 내게는 가치가 없지 않았다.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아요

김나리 지음
책나물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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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기자였고, 보좌관이었으며,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황보람의 기록이다. 수시로 소속팀을 옮기는 운동선수를 가리키는 '저니맨'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명함을 가졌다가 놓아버린(때로는 잃어버린) 작가 자신의 '저니' 이야기를 담았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써내려간 저니의 어느 순간에 저 유명했던 전시의 뒷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나는 그 부당함을 목도하면서도 그저 침묵했던 나를 반성한다. 책임 있는 이들의 비겁과 무지성적인 비판 가운데서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던 귀한 이가 무릎 꿇고 마음을 다치는 과정이 안쓰럽게 보인다.

다만 <황보람의 저니>를 훌륭한 책이라고 추천하긴 민망한 구석이 있다. 저니맨이란 성격과 꼭 맞게 실린 글들이 응집력 있게 모여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대목이 있었단 건 기록할 만하다.

개중에선 아직 아물었다 할 수 없는 상처와, 그리하여 충분히 깊이 열고 따져볼 수 없었던 기억들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어느 기자, 또 보좌관의 절실한 발버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황보람의 저니

황보람 지음
편않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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