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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첫 TV 화면은 대규모 군인들의 발 맞춘 엄청난 행렬이었다. 척척 발을 잘도 맞추어 행진하던 그들은 정말 멋있어 보였다. 도대체 무슨 날이기에 저런 행사를 하는 걸까 궁금했다. 곁에 할머니가 계셔 어쭤보니 대통령이라는 사람의 취임식이라고 하셨다. 어린 생각에도 대통령이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했다. 저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저렇게 커다란 행사를 하다니 말이다. 조금 더 커서 그 사람이 전두환인 걸 알았다.
나는 격정의 시대를 조금 지나 태어난 사람이다. 5.18 민주화 운동과 6월 민주 항쟁은 모두 내가 너무 어릴 때나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 일어났으니, 이제 좀 알 만한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대학교 1학년 교양 수업으로 <전태일 평전>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편안히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더 좋은 사회를 위해 노력했구나...하는 것이 비로소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벌써 전에 구비해 두고 읽지 못하고 있던 건, 또 한 번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어야 함을 알고 있었음이다. 하지만 노벨문학상까지 탄 이 마당에 더 미뤄둘 수 없어 책을 집어들었다.
처음엔 제 1장의 2인칭 시점에 당황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시적인 문장에 또 당황하고,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며 너무나 입체적인 이 책의 구성에 놀라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소문만큼 엉엉 밤새도록 울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눈물을 흘릴 만큼 흘렸고 속상하고 가슴 아팠다.
책은 제 1장 2인칭 시점으로 동호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중 3, 친구의 누나를 찾으러 친구와 함께 나왔다가 친구마저 잃어버린 후 사람들을 돕는 동호. 그리고 1인칭 시점의 동호 친구 정대, 동호와 함께 사람들을 도왔던 3인칭 시점의 은숙, 다시 1인칭 시점이지만 동호를 챙기던 김진수와 함께 시위대였던 누군가, 은숙과 시체를 담당하던 1인칭의 선주, 1인칭의 동호 엄마, 에필로그엔 그 동호를 따라 되짚던 작가의 시점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처럼, 고백처럼, 누군가를 관찰하는 이야기로... 하나의 사건을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한다. 그리고 그 중심엔 동호가 있다. 아직 중 3의 어린, 그럼에도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으려 그 한복판에 있던 동호.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114p
학생들에게 꼭 읽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희의 편안한 삶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너희도 무언가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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