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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왕자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의 표지 이미지

마음의 왕자

다자이 오사무 지음
민음사 펴냄

아마 나는 평생 다자이 오사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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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이름을 붙여 세계를 재창조한다

코다크롬

한영원 지음
봄날의책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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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기어코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

장류진의 첫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실에서 펼쳐지는 미세한 순간들을 포착했다. 『연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연장선이다.

장류진 소설 속 상황은 특별하지 않다. 어떤 이는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운전을 하지 못한다(「연수」). 어떤 이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가창력을 뽐내며(「펀펀 페스티벌」) 또다른 이는 회사의 불합리한 상황에 합류한다(「공모」). 평범한 상황들로 사건을 만드는 장류진 소설은 왜 재미있는가?

우리는 장류진의 일상성에서 큰 매력을 느낀다. 일상성에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상황(사소한 사건들)과 우리 주변의 인물들이 포함된다. 우선 인물들이다. 장류진 소설 속 인물들은 마치 우리 주변에 있는 인간들 중 한 명을 떠올리게 한다. 예시로「펀펀 페스티벌」속 잘생겼지만 얄미운 이찬휘, 「라이딩 크루」에서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남자들, 「공모」속 올바르게 행동하고자 하는 '나'가 있다. 마치 우리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데려다가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하곤 재치있게 써놓은 것만 같다.

두 번째로 익숙한 상황 속 사소한 사건들이다. 장류진의 단편들은 사소한 사건들(운전 배우기, 라이딩크루에서 자전거 타기, 기자로서 인터뷰하기)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동계올림픽」에서 기자는 인터뷰를 하고, 「공모」에서 직장인이 회식을 하듯이. 즉, 일상적인 상황에서 커다란 사건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장류진 단편들의 차이는 인물들이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 발생한다. 그녀의 인물들이 본모습을 보이는 순간, 우리에게 주는 감정들이 단편마다 달랐다.* 더불어 제목을 들으면 소설 속 내용이 헷갈리지 않을 정도로(한 작가의 단편집을 읽으면 단편끼리 헷갈리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매우 생동감 있는 지금의 이야기를 전한다. 뉴스에 나오는 라이딩 크루 이슈처럼 말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그때 현실의 우리를 발견했듯, 장류진은 우리의 이야기를 할 '지금의' 작가이다. 일상을 그리는 그녀의 경쾌한 발걸음을 기어코 응원한다.

* 「연수」에서는 나아갈 수 있다는 감동,「펀펀 페스티벌」에서는 불쾌함을 느꼈다. 또,「공모」는 소름이 끼쳤으며「라이딩 크루」에서는 유쾌한 공감을, 「동계올림픽」은 기묘한 현실을, 「미라와 라라」에선 오만함의 수치를 느꼈다.

연수

장류진 지음
창비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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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손글씨로 꾹꾹 눌러담은 진심은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문상훈의 편지를 매우 좋아했고,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의 문상훈을 좋아했기에 그의 에세이를 출간 전부터 기대했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는 인간 문상훈의 취향이나 성향을 잘 볼 수 있는 코너이다. 나는 웃길 땐 소소하게 웃기는, 진지할 땐 진지한 그가 좋았다. 무엇보다 타인의 취향을 이해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귀 담아듣는 그가 좋았다. 어떨 땐, 게스트보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문상훈의 에세이에서 그의 취향이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일대기를 알 수 없었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은 그의 깊숙한 마음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삶의 정답인 것 마냥 "이렇게 해라"라고 강요하고 조언하는 말투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은 아무런 조언이나 강요를 하지 않는다. 그저 문상훈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은 문상훈의 자기반성문이자 일기장이다.

그의 일기장을 들여봤을 때, 문상훈의 세심한 언어들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문상훈의 시선들에 감탄하고 배울 수 있었다.

다만 책의 편집와 글의 형식에 있어서 아쉬웠다. 먼저 한 챕터의 이야기 안에는 본문의 글과 문상훈의 손글씨가 있다. 본문의 글 중간에 손글씨가 등장해 글을 읽는 데 흐름이 끊겨 방해되었다. 손글씨를 처음이나 끝에 배치했다면 손글씨의 여운이 더 길지 않았을까?

또, 글의 형식에 있어 오글거림을 견뎌야 한다. 물론 내가 말하는 건 내용의 오글거림이 아니다. 편지라고 제목을 붙여놓으며, 본문 내용이 끝난 후 마지막에 '나 자신에게'를 붙이는 오글거림 말이다.

모든 아쉬움을 뒤로 미루고, 그의 진심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당기이든 책이든 문상훈을 자주 보아야겠다. 손글씨로 꾹꾹 눌러담은 진심은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것이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문상훈 지음
위너스북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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