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고, 죽는다.
책에 인용된 문장인데, 이 짧은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아닌가 한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난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주인공 필립이 어렸을 땐 그에 대한 동정과 슬픔, 아픔을 느꼈고, 성인이 되어 누군가를 사랑할 땐 미움과 분노,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꼈으며, 책 말미에 필립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감정이 녹아있는 호수에 몸을 푹 담그고 있는 기분이었고, 동시에 아주 소중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것은 ‘우리가 왜 소설을 읽어야만 하는가?’ 에 대한 답변이며, 끊임 없이 좋은 작품을 찾아 읽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문학 작품이 지식을 쌓는데 도움을 준다면, 문학작품은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분명 타인을 폭넓게 이해하고,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인간미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
아무튼 이 책의 저자인 서머싯 몸은 스피노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유튜브를 뒤져 스피노자 철학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맙소사!
그는 시대를 수백년 앞선 선구자였다.
언제가는 스피노자 사상의 핵심 저서인 ‘에티카’를 꼭 읽어봐야겠다.
인간 개개인은 나름의 무늬를 만든다.
그 무늬가 모여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고,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킨다.
무늬는 양탄자에 새겨진 프렉탈처럼 무한이다.
당장은 볼 수 없지만, 후세에는 그 무늬를 옅볼 수 있다.
그것이 역사다.
1
읽을 만한 책이 있나 살펴보다 낯익은 제목에 손이 나갔다.
그런데 맙소사…
이런 귀한 책을 이제야 읽게 되다니!
이렇게 장탄식을 쏟은 이유는 스토리가 재미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간 잊고 지냈던 철학적 사유, 그러니까 실존에 관한 질문을 내게 다시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고를 때와 달리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도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작품해설에서 그 함의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걸 깨닫고 나니 이 책은 물론 저자 또한 더 위대하게 느껴졌다.
해설에 따르면 달은 정신을, 6펜스는 물질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짧게 덧붙이자면 과거 영국에 6펜스 짜리 동전이 있었는데, 이 동전이 우리나라의 100원처럼 매우 흔하게 쓰였다고 하니 물질의 대표로 손상이 없어 보인다.
제목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아주 간략하게나마 이 책의 줄거리를 소개할까 한다.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폴 고갱을 모티브로 한 가상의 인물이며 거칠고 무뚝뚝한 중년 남자이다.
그는 어느날 불쑥 아내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가출을 단행한다.
편안하고 안락한 현실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고 굶주리고 고통받는 고난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가족을 내팽겨치고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허름한 집에 틀어박혀 매일 그림만 그린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운명인듯 그림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비참한 생활 속에서 가까스로 굶어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어찌저찌하여 타히티라는 섬에 도착해 원주민 처녀와 결혼도 하고 그림도 원없이 그리며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나병에 걸리게 된 그는 병으로 눈이 멀었음에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방 안에 아름다우면서도 기이한 벽화를 그리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여태껏 바래왔던 일생일대의 작품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이룬 그는 아내에게 집을 불살라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평화롭게 눈을 감는다.
이 스토리 속에 서두에 말한 바 있는 바로 그 질문이 들어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정신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물질을 택할 것인가?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딱히 답을 내릴 수 없는 물음이지만 계속해서 내 머릿 속을 맴돈다.
이 책에 감명받은 나는 서머싯 몸이 쓴 또 한 권의 책을 붙잡았다.
1
처음 포털에 뜬 빨간 뉴스 속보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지, 진짜…?’
곧바로 욕실 문을 쾅쾅 두드려 샤워 중인 아내에게 소리쳤다.
“여보,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탔어!”
이렇게 외치는 순간 커다란 감동과 전율이 밀려왔다.
거실에서 놀던 아이가 달려와 왜 그러느냐고 물으며 달려왔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책장을 뒤적였다.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있어야 할 책이 없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처형이 빌려갔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한시름 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책 내용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충격적인 장면 몇 토막, 그로테스크한 느낌, 비극적인 스토리 라인, 회색빛의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은 이랬다.
아무리 되감아봐도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아무 블로그나 검색해 들어가 줄거리를 읽다보니, 머릿속을 휘감고 있던 희뿌연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떠다니던 소설속 장면들이 가지런히 연결되었으며, 생각치 못했던 장면들도 하나 둘씩 떠올랐다.
참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한강 작가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