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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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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장류진 소설집)의 표지 이미지

연수

장류진 지음
창비 펴냄

기어코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

장류진의 첫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실에서 펼쳐지는 미세한 순간들을 포착했다. 『연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연장선이다.

장류진 소설 속 상황은 특별하지 않다. 어떤 이는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운전을 하지 못한다(「연수」). 어떤 이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가창력을 뽐내며(「펀펀 페스티벌」) 또다른 이는 회사의 불합리한 상황에 합류한다(「공모」). 평범한 상황들로 사건을 만드는 장류진 소설은 왜 재미있는가?

우리는 장류진의 일상성에서 큰 매력을 느낀다. 일상성에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상황(사소한 사건들)과 우리 주변의 인물들이 포함된다. 우선 인물들이다. 장류진 소설 속 인물들은 마치 우리 주변에 있는 인간들 중 한 명을 떠올리게 한다. 예시로「펀펀 페스티벌」속 잘생겼지만 얄미운 이찬휘, 「라이딩 크루」에서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남자들, 「공모」속 올바르게 행동하고자 하는 '나'가 있다. 마치 우리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데려다가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하곤 재치있게 써놓은 것만 같다.

두 번째로 익숙한 상황 속 사소한 사건들이다. 장류진의 단편들은 사소한 사건들(운전 배우기, 라이딩크루에서 자전거 타기, 기자로서 인터뷰하기)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동계올림픽」에서 기자는 인터뷰를 하고, 「공모」에서 직장인이 회식을 하듯이. 즉, 일상적인 상황에서 커다란 사건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장류진 단편들의 차이는 인물들이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 발생한다. 그녀의 인물들이 본모습을 보이는 순간, 우리에게 주는 감정들이 단편마다 달랐다.* 더불어 제목을 들으면 소설 속 내용이 헷갈리지 않을 정도로(한 작가의 단편집을 읽으면 단편끼리 헷갈리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매우 생동감 있는 지금의 이야기를 전한다. 뉴스에 나오는 라이딩 크루 이슈처럼 말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그때 현실의 우리를 발견했듯, 장류진은 우리의 이야기를 할 '지금의' 작가이다. 일상을 그리는 그녀의 경쾌한 발걸음을 기어코 응원한다.

* 「연수」에서는 나아갈 수 있다는 감동,「펀펀 페스티벌」에서는 불쾌함을 느꼈다. 또,「공모」는 소름이 끼쳤으며「라이딩 크루」에서는 유쾌한 공감을, 「동계올림픽」은 기묘한 현실을, 「미라와 라라」에선 오만함의 수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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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너 그 사람이랑 친해?"라고 묻는 질문에 우리는 망설인다. 친하다고 말할 수 사이인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했다. "난 걜 되게 아끼고 걜 되게 좋아해"(140813 푸른밤 종현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멈칫했던 순간들. 흔히 연애에서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고민하는 것처럼 우정에서도 언제나 조금씩 흔들렸고 심술 부린 날들.

『동경』은 여름에서 다시 여름으로 끝나는 시간 동안 아름, 해든, 민아의 성장과 우정을 담은 장편 소설이다. 세 명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몇 가지있다. 첫 번째는 인형 리페인팅을 하거나 했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셋은 모두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모두 나는 상대를 좋아한다고 확신한다. 소설은 상대에 대한 확신을 자기 자신을 통해서 채워간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타인을 통해 나"를 보라는 말이 있다. 솔직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아름은 동경하는 해든과 민아를 보며 자기를 되돌아본다. 해든 또한 아버지 장례식장에 찾아온 아름과 아플 때 옆에 있어주는 민아를 보며 자신의 심술에 대해 생각한다. 홀로 아등바등 버텨왔던 민아는 조금씩 아름과 해든에게 기대기 시작하며 달라진다.
"도대체 나는 누구지. 그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은 그 둘을 섞은 모습도 아니고 그저 여백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이제 나는 좀 나이고 싶어.(p.197)" 아름과 해든, 민아는 각자의 시선에서 둘을 바라보다가 비로소 "나"를 맞닥뜨린다. 이는 결국 카메라를 드는 아름이 되고, 이번 생은 최선이라고 답하는 민아가 되고, 다시 짓는 걸 찍을 거라 답하는 해든이 된다.

이를 직업적으로 조명하기도 한다. 인형 리페이팅을 하던 아름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 직접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물론 이는 흔한 직업적 성장에 해당한다.

이렇게 『동경』은 뒷 이야기를 예상하게 만드는 흔한 서사가 등장한다. "아픈 가족 이야기"로 다른 장편들과 차별점이 없었다. 또한, 곳곳마다 감정이 과잉으로 느껴진 부분들(도자기 사건으로 인한 아름의 감정)도 있었으며, 후반부에 갈수록 분량을 늘리기 위한 마무리 서사(봄, 여름 편)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동경』은 오래된 카메라 속 문득 꺼내보며 웃는 얼굴들을 닮았다. 책상에 둔 액자처럼 매일 보지는 않지만, 억지로 미소 지었던 카메라의 오랜 얼굴을 보면 왠지 어렴풋한 기억을 잡아버리는 것만 같다. 『동경』 역시 예상되는 성장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마음이 계속 가는 이유는 우리가 오래된 카메라의 사진을 보고 웃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우정은 미끄럽다. 누군가와 부딪혀서 싸우고 혼자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넘어진 게 웃긴 추억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우정은 시간을 쌓아간다. 상대방을 생각하느라 그 사람과 친한 사이냐는 질문에도 편히 대답 못하지만, 이제 그처럼 소심하게나마 걜 되게 아끼고 좋아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

동경

김화진 지음
문학동네 펴냄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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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매일매일이 바빴던 2024년이 끝나고 나는 여행을 갈망했다. 특히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해외에 가고 싶다며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동시에 드는 생각은 나는 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가, 였다. 지금까지 '근래 갔던 이탈리아 여행이 좋아서'라고 답했지만, 이탈리아에게만 해당되는 답이었을 뿐, 여행을 가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으므로 마음 한편에 궁금증이 있었다.

이는 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확장되기도 했는데, 왜 나는 자꾸만 어디로 떠나고 싶어 하는가, 이다. 『여행의 이유』는 작가 김영하가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들을 찾는다. 근본적으로 여행하려는 욕구의 발현, 여행에서 '나'라는 존재의 변화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여행이 좋다고 대답했지만,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여행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일기가 아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김영하의 여행일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어떤 걸 했다는 단순한 나열들이 없다. 여행 성향과 같은 유행도 따라가지 않는다. 기어코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의 이유"를 끈질기게 쫓아간다.

-여행은 노바디
그는 여행을 '아무것도 아닌 자(노바디)'가 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어버리는 것. 우리는 지금 MBTI 검사를 하고, 친구들에게 나를 질문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애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온전한 나를 여행지에 맡긴 채 즐긴다. 여행지에서 흔히 "어차피 저 사람들 나 모르잖아"라는 말을 하듯, 우리는 여행지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나가는 사람이 되었을 때의 희열이 있다. 나에게 벗어나 '개별성을 잃어버'릴 때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 나의 여행
김영하의 여행 이야기였지만, 나의 여행 이야기를 찾고 싶게 만든다. 요새 좋은 작품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답한다. 가끔 시나 소설에서 그들만의 세계가 있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느꼈던 적 있다. 김영하의 에세이는 나의 틈 만들어 자꾸만 나만의 답들을 찾아 나서게 한다.

- 그 틈에서 찾은 나의 답
그렇다면 나는 왜 여행을 가려고 애쓰는가. 여행을 가려는 바깥의 이유들보단 그저 아무 이유의 보탬도 없이 떠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말했듯, 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시간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나의 현재는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그런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어디론가 떠나서 온전한 현재를 보내고 싶어 했던 것만 같다.

앞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날 때마다 김영하를 떠올릴 것이다. 김영하가 덧붙인 여행의 이유를 떠올리며 나 또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금세 떠나버리고 싶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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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믿음을 따라 들어오는 어둠, 막을 방법이 없으려나

온다는 믿음

정재율 지음
현대문학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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