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의 기억이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다. 내겐 없는 기억이, 내가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여름이었어. 나도 나도 하복을 입고 있었지. 다신 널 찾아가지도, 알은척하지도 않겠다고 말한 뒤라 혹시라도 네가 나를 볼까 봐 내리려고 했어. 그런데 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버스에 타더니 빈자리를 어떻게 잘 찾아서 앉더라. 그러곤 에어컨을 틀어놨는데도 창문을 열더니, 창에 머리를 기대고 바람을 맞았어. 뒤에서 한참을 봤어, 너를."
"••••••."
"바람에 네 머리카락이 날리는데, 그 움직임이 느리게 보이더라고. 천천히 나풀거리는 것처럼."
"••••••."
"예뻤어."
컵을 문지르던 엄지가 멈칫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야."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돌려 선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정면을 바라보던 선재가 비스듬히 고개를 내리고 눈을 맞췄다.
"내가 먼저 널 좋아했어. 그리고 내가 더 오래 좋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