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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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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호프 자런 지음
알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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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식물학자가 연구하는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20년간 겪어온 인생 이야기.

식물들은 그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환경 조건을 직접 바꾸어가기도 하는 능동적인 존재였다. 주변 식물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해로운 병충해에 대응하기도 하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물을 가두는 저수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유전자가 같더라도 뚜렷한 개성을 가진 식물도 있었다. 인간과 식물이 겪는 시간의 속도가 달라서 눈치채기 힘들 뿐 우리들은 모두 다 닮았다. 하긴, 모든 생명체의 DNA는 배열만 다를 뿐 인자는 같다고 하니.

그래서일까. 봄에 싹을 틔우고 가을에 줄기를 굵게 만들어 가는 식물들을 보고 있자면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전전긍긍하지 않고 좀더 먼 앞날을 내다보며 기다리는 힘이 길러진다.

젊은 과학도에서 인정받는 과학자가 되기까지 헤쳐온 무수한 역경들의 스토리도 성장 소설을 닮았다. 연구비를 따내지 않으면 실험실에서 쫓겨나고 실험장비들도 애물단지가 돼 버린다. 식물을 연구하며 16개국에서 수만 개의 표본을 채집하고 폐기하고 동위원소를 측정했다. 그 시간들을 처음부터 함께 해 온 동료 빌의 이야기도 좋았다.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고 갈등이 생기면 조절하고 사생활을 인정해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공부 잘해야 한다며 격려하는 말로 "공부 안 하면 고생한다. 공부를 잘해야 편하게 산다."는 말을 종종 한다. 옳은 격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는 그냥 앞에 펼쳐질 힘든 날들을 견디는 인내심을 기르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는 게 더 맞는 말 같다.

식물을 본다. 겨우내 잎이 다 졌다가도 봄에 새로이 틔우는 싹을 본다. 보이지 않는 저 흙 속에서는 움틀 준비를 하고 있는 싹들이 무수히 많다. 99.5퍼센트의 씨앗은 죽고 0.5퍼센트만이 빛을 본다고 한다. 빠르게 변하는 생활 속에서 지쳐 있다가도 한번씩 식물을 돌아보며 숨을 돌린다. 당장은 아니어도 무수한 시도를 하다 보면 언젠간 나도 하나쯤은 성공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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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 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 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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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가 한국을 처음 떠난 동기는 한국에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도 명문대는 아니지만 홍익대를 나왔고, 김태희만큼은 아니지만 외모가 못나지도 않은 것 같고, 강남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아파트는 아니지만 부모님과 자가에서 살고 있는데, 왜? 어찌 보면 평균보다 나은 조건인데 한국에서 살기를 포기한다.

무모하다 싶으면서도 한국보다 호주에서 사는 편이 낫겠다고 결정한 이상 구실이야 붙이기 나름이다. 한국에서의 삶에 지쳐서 호주에서는 이보다는 나으리라 하는 막연한 생각에 떠난 것이다. 한마디로, '쉽게' 결정하고 떠났다.

그리고 행복해지려고 다양한 시도들을 한다.

호주에서 어학원 과정을 들으면서 영어 실력을 키우려고 한국인이 없는 셰어하우스 거실에서 불편하게 지내기도 하고, 회계학 대학원에 등록해서 학위를 딴다. 잠시 한국에 귀국해 치른 아이엘츠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시민권을 따낸다. 시도는 쉬웠고 결과는 좋았으나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텍사스 친구의 범법 행위에 연관되어 쉐어하우스에서 강제 퇴거를 당했고, 위조 지폐 문제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인종차별은 기본이다.

호주도 한국 못지 않게 삶이 험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삶이 '주어진 것'이었다면 호주에서의 삶은 '이루어낸 것'이었으므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호주에서 살기로 결정한다.

인생은 길고 길은 많다. 다른 목적지로 가는 길도 있고, 같은 곳에 가는 길도 여러 개가 있다. 작가는 '현재 삶에 불만이 있다면 주저앉아 투덜대지만 말고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앞으로 나아가 보자'라고 말한다.

🧨 '주어진 평안한 삶' VS '황무지를 개척하는 삶'
당신의 선택은?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민음사 펴냄

읽었어요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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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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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관타나모에 위치한 미군 기지에는 수용소가 있다.
미국의 영토이지만 21세기 현재에도 인권과 법이 없는 곳. 미국의 인권법이 닿지 않는, 미군들의 대테러작전을 앞세운 고문이 난무하는 곳.

이야기의 주인공인 무함마드 엘-고라니는 공부하러 파키스탄에 갔다가 두 달 만에 9.11 테러가 발생하고, 사우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군인들에게 끌려가 감옥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있는 곳을 말하라며 고문을 당한다. 그의 나이가 겨우 13세였을 때의 일이다.

2008년 무죄가 입증되어 석방되었으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 이웃들의 배척, 사기, 계속되는 정부의 감시 때문에 일상을 지켜나가기 힘든 무함마드 엘-고라니.

표지에서 밝게 웃고 있는 주인공은 관타나모에서 석방될 때의 모습이기도 하도, 평소 무례한 간수들을 골탕먹이는 유쾌한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일담에서 석방 이후 계속되는 고난 때문에 기운 없이 늘어져 의욕을 잃은 듯한 모습은 매우 서글프다.

작가가 주인공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것은 2017년, 책이 출간된 것은 한 해 뒤인 2018년,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것은 2024년. 현재 무함마드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관타나모 키드

제롬 투비아나 지음
돌베개 펴냄

읽었어요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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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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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님의 유튜브 영상 팀인 팀최마존이 기획한 300여 편의 방송 중에서 양심과 맞닿아 있는 편들을 선정했다.

1.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2023년 8월 29일, 서울대 졸업식 축사
2. “복제한 반려견은 진짜 반려견일까”
- 동물 복제에 대한 윤리적 고찰
3. “고향, 제주 바다는 어때?”
- 제돌이와 친구들을 고향 제주 바다로 돌려보낸 역사적 순간
4. “벨라의 자유를 찾아주세요”
- 흰돌고래를 방생하기로 한 약속을 잊은 기업(롯데)에게 미래는 없다
5. “과학자들의 절박한 외침”
- 실험실을 떠나 환경운동의 시위 현장으로 향한 과학자들
6. “과학의 발전이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입니다”
- 한국 과학계의 현실과 미래
7. “누구에겐 뺏기는 무엇이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굴레였다”
-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다

알면 사랑한다.
나누고 공존한다.
토론을 넘어 숙론한다.
이것이 바로 공생하는 인간, 호모심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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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지만 이 책만큼은 우리집 책꽂이에 꽂혀 있으면 어딜 가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양심'에 따르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구매했다.

📚 양심은 절대 확실한 게 아니며, 뇌가 성장함에 따라 함께 발달하고 인정과 불인정에 민감하다.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은 실험과 경험에 의해 다듬어진다.(22쪽)

그러니까, 양심은 강해지기도 흐려지기도 한다는 건데 적어도 집에 심장처럼 빨간 표지의 《양심》 책 한 권을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마다 좋은 마음이 각인되기를 바란다.

양심

최재천 외 1명 지음
더클래스 펴냄

읽고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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