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찜찜한 느낌에서 왜 고독사할 운명까지 비약을 거듭하나. 무엇을 위한 '파국 플롯' 일까? 거기에는 은밀한 이득이 있다. 희망을 품으면 뭔가를 해야 하지만 절망은 편안하다. 울기만 하면 된다. 어쩌면 나는 그 절망의 나른함 때문에 파국 플롯을 짜는지도 모른다. 울면서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건 참 포근하다.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제 팔자 제가 꼰다'는 말이 떠오른다.
+'생선이 컸다'고 쓰면 혼난다. 크기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생선이 어른 팔뚝만 하다거나 길이가 몇 센티미터라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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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그릇 때문에 촉발된 싸움이었는데 양쪽 집 형제들이 나와서 발차기를 해댔다. 선배가 물었다.
"맞은 사람 말이야, 오른쪽 뺨 맞았어? 왼쪽 뺨 맞았어?"
슬픔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김소민 지음
스테이블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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