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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열리는 카페 도도

시메노 나기 지음
더퀘스트 펴냄

읽었어요
“손님은 꿈이 뭐예요?”
안경 너머 아몬드 모양의 가늘고 긴 눈이 무쓰코를 향했다.
“실은 지금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요. 젊을 때는 야망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고. 이 일도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까. 이 나이 먹고 나를 찾는 다는 것도 참 한심한 일이죠.”
무쓰코가 억지웃음을 지으려고 하자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냥 놔두면 되지 않을까요?”
소로리의 말에 스튜를 뜨던 숟가락을 그릇으로 되돌린다.
“네?”
“그 스튜는 재료를 다 넣고 그 다음엔 그냥 놔두기만 하면 맛있어집니다. 채소도 고기도 푹푹 끓이면 깊은 맛이 쫙 배어 나오죠.”
“네. 너무 맛있어요. 채소도 살살 녹고 고기도 부들부들하고.”
“그렇죠. 그러니까 초조해할 필요가 없어요.”
느긋한 말투 때문인지, 언제나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이는 시간이 조금 걸음을 늦춘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이도 나이고, 천천히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남은 시간이 이제 어느 정도인지 반대로 계산해보면 스튜가 푹 끓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어요. 안타깝지만.”
“없어진다고 걱정해봤자 아무 소용없잖아요. 그보다는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살려서 하고 싶을 걸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편이 훨씬 낫죠. 시간 낭비를 안 해도 되고요.”
없는 걸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있는 걸 살린다....
“있는 거라고 해봤자.”
“손님께선 지금까지 같은 일을 계속해왔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카카오에선 아주 조금밖에 코코아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작은 것들을 모으고 모은 덕분에 맛있는 코코아가 만들어지니까요.”
무쓰코는 생각한다. 자신의 카카오는 다 써버린 게 아니라 카카오 매스로서 쌓여가고 있다. 계속해온 일에 나름의 의미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달려온 과정이 절대 허송세월은 아닐 것이다.

“한 번도 불탄 적 없는 산림은 화재에 취약해요.”
소로리가 스튜 냄비를 저으면서 그런 말을 했다.
“무슨 속담 같은 건가요?”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단순한 사실이 그래요. 실패와 경험이 계속 쌓여갈 때 그게 자연스럽게 강점으로 만들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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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자, 이제 당신에겐 딱 한 개의 소원만 남아 있군요.’
그가 말했네.
‘세번째 소원 말이오. 그 소원은 제발 좀 더 조심스럽게 다루어 주길 바라오. 약속할 수 있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침을 꿀꺽 삼킨 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덧붙였어.
‘하지만 먼저 저를 다시금 자네라고 불러 주셔야 합니다.’
그러자 그가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어.
‘좋아 젊은이.’
그러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지.
‘잘 살게나. 너무 불행해하진 말고. 자네의 하나 남은 소원은 조심해서 써야 하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나는 엄숙하게 대답했어. 하지만 그 사람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지. 바람에 휙 날아간 것처럼.
“그래서요?”
“그래서요라니?”
“그 뒤로 어르신은 행복하신가요?”
“아, 그거. 행복하냐고?”
나의 아웃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에서 모자와 외투를 꺼내 오더니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사십 년 동안 마지막 세 번째 소원에 손을 대지 않았네. 종종 그럴 뻔도 했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네. 소원이란 아직 마음속에 품고 있을 때까지만 좋은 것이라네. 잘 살게나.”

행복을 위한 메르헨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여유당 펴냄

읽었어요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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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어.
“그리고 말이다 핀. 네 마음을 절대 모를 것 같은 사람을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렴. 어쩌면 그 사람이 바로 네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겠니.
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다. 속은 이렇듯 다른 비밀을 품고 있어.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요?”
핀이 이불 밖으로 얼굴을 쏙 내밀었어.
“그렇고말고! 핀, 가만히 들여다보렴. 겉으로 보이는 것은 아주 작아. 사람은 모두 커다란 세계를 품고 있지.”
할아버지가 대답했어.
“겉보기와 달리 그 사람만의 특별한 경험이 있고, 어떤 행동을 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고, 다름 사이에서도 같음을 발견할 수 있지.”

가만히 들여다보렴

코리 도어펠드 지음
북뱅크 펴냄

읽었어요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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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마리아, 내가 그렇게 강해 보이니? 게다가 팍치도? 있지, 팍치가 왜 언제나 아오자이를 입고 있는지 알아?”
선생님은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선뜻 베트남 사람이니까, 라는 대답은 하지 못했다.
“사미도 저렇게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낼 때까지 짧은 시간이 걸렸어.”
문득 고개를 드니 팍치와 사미가 이번에는 술래잡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추프도 가세해서 서로 장난을 쳤다. 꺄악꺄악 하고 신난 팍치 씨의 아름다운 아오자이 자락이 노을에 녹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으니 조금쯤 흘분이 가라앉았다.
“나도 걸핏하면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성질 급하고, 겁도 많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선생님은 언제나 긍정적인 분이고, 뭐든 할 수 있는 완벽한 분이잖아요.”
언제나 느끼고 있던 것을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갑자기 깔깔깔 웃어댔다.
“마리아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다니까. 내가 뭐든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너희보다 오래 살았기 때문이야. 실패한 경험이 무진장 많거든. 게다가 그렇게 느낀 것은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어서가 아닐까?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일 때 더 나은 사람이 되거든. 그 삶이 좋으면 점점 호감을 사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아나 나도 너희들과 있을 때는 평소의 나보다 수준을 높이는 걸거야.”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
그러나 확실히 나도 오노데라와 살던 시절에는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건 제대로 한 것 같다. 너무 수준 차이가 나서 부끄럽지만.
“뭐,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이 있겠지만.”
선생님은 소녀처럼 발딱 일어났다. 나 때문에 선생님 슬리퍼가 완전히 흙투성이가 됐다.
“지금 이렇게 모두가 살아 있다는 것이 멋진 게 아닐까? 마리아도 그렇고, 지금 여기 있다는 자체가 말이야.”

츠루카메 조산원

오가와 이토 지음
문예춘추사 펴냄

읽었어요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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