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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문상훈 지음
위너스북 펴냄

손글씨로 꾹꾹 눌러담은 진심은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문상훈의 편지를 매우 좋아했고,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의 문상훈을 좋아했기에 그의 에세이를 출간 전부터 기대했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는 인간 문상훈의 취향이나 성향을 잘 볼 수 있는 코너이다. 나는 웃길 땐 소소하게 웃기는, 진지할 땐 진지한 그가 좋았다. 무엇보다 타인의 취향을 이해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귀 담아듣는 그가 좋았다. 어떨 땐, 게스트보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문상훈의 에세이에서 그의 취향이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일대기를 알 수 없었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은 그의 깊숙한 마음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삶의 정답인 것 마냥 "이렇게 해라"라고 강요하고 조언하는 말투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은 아무런 조언이나 강요를 하지 않는다. 그저 문상훈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은 문상훈의 자기반성문이자 일기장이다.

그의 일기장을 들여봤을 때, 문상훈의 세심한 언어들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문상훈의 시선들에 감탄하고 배울 수 있었다.

다만 책의 편집와 글의 형식에 있어서 아쉬웠다. 먼저 한 챕터의 이야기 안에는 본문의 글과 문상훈의 손글씨가 있다. 본문의 글 중간에 손글씨가 등장해 글을 읽는 데 흐름이 끊겨 방해되었다. 손글씨를 처음이나 끝에 배치했다면 손글씨의 여운이 더 길지 않았을까?

또, 글의 형식에 있어 오글거림을 견뎌야 한다. 물론 내가 말하는 건 내용의 오글거림이 아니다. 편지라고 제목을 붙여놓으며, 본문 내용이 끝난 후 마지막에 '나 자신에게'를 붙이는 오글거림 말이다.

모든 아쉬움을 뒤로 미루고, 그의 진심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당기이든 책이든 문상훈을 자주 보아야겠다. 손글씨로 꾹꾹 눌러담은 진심은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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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이 바빴던 2024년이 끝나고 나는 여행을 갈망했다. 특히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해외에 가고 싶다며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동시에 드는 생각은 나는 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가, 였다. 지금까지 '근래 갔던 이탈리아 여행이 좋아서'라고 답했지만, 이탈리아에게만 해당되는 답이었을 뿐, 여행을 가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으므로 마음 한편에 궁금증이 있었다.

이는 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확장되기도 했는데, 왜 나는 자꾸만 어디로 떠나고 싶어 하는가, 이다. 『여행의 이유』는 작가 김영하가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들을 찾는다. 근본적으로 여행하려는 욕구의 발현, 여행에서 '나'라는 존재의 변화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여행이 좋다고 대답했지만,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여행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일기가 아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김영하의 여행일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어떤 걸 했다는 단순한 나열들이 없다. 여행 성향과 같은 유행도 따라가지 않는다. 기어코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의 이유"를 끈질기게 쫓아간다.

-여행은 노바디
그는 여행을 '아무것도 아닌 자(노바디)'가 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어버리는 것. 우리는 지금 MBTI 검사를 하고, 친구들에게 나를 질문하면서 나를 누구인지 알려고 애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온전한 나를 여행지에 맡긴 채 즐긴다. 여행지에서 흔히 "어차피 나 모르잖아"라는 말을 하듯, 우리는 여행지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나가는 사람이 되었을 때의 희열이 있다. 나에게 벗어나 '개별성을 잃어버'릴 때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 나의 여행
김영하의 여행 이야기였지만, 나의 여행 이야기를 찾고 싶게 만든다. 요새 좋은 작품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답한다. 가끔 시나 소설에서 그들만의 세계가 있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느꼈던 적 있다. 김영하의 에세이는 나의 틈 만들어 자꾸만 나만의 답들을 찾아 나서게 한다.

- 그 틈에서 찾은 나의 답
그렇다면 나는 왜 여행을 가려고 애쓰는가. 여행을 가려는 바깥의 이유들보단 그저 아무 이유의 보탬도 없이 떠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말했듯, 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시간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나의 현재는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나는 지금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어디론가 떠나서 온전한 현재를 보내고 싶어 했던 것만 같다.

앞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날 때마다 김영하를 떠올릴 것이다. 김영하가 덧붙인 여행의 이유를 떠올리며 나 또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금세 떠나버리고 싶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펴냄

1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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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따라 들어오는 어둠, 막을 방법이 없으려나

온다는 믿음

정재율 지음
현대문학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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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408

라디오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중학생, 불면증에 잠을 못 이루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MBC FM 4U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들었다. 당시 명언을 좋아했던 나는 오프닝을 들으며 감탄했고, 숨어있는 명곡들을 내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하며 뿌듯해했다. 라디오 사연을 들으며 울고 웃으며 나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삶의 모양들을 알아갔다. 거기에 다정한 DJ는 몇 년 동안 까칠한 나를 조금씩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어느 날 <푸른 밤 종현입니다>의 DJ가 바뀐다는 소식을 접했고, 매일 만난 친구를 잃은 듯 펑펑 울며 나의 라디오도 점차 멀어져 갔다. 이후, 종종 라디오를 들었으나 꿈이었던 라디오 작가를 위해 들었을 뿐, 정이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내 DJ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난 후, 나는 오랫동안 라디오를 듣지 못했다. 동시에 라디오 작가의 꿈도 잃었다.

지금은 조금 나아져 가끔 예전처럼 <푸른 밤 종현입니다> 다시 듣기를 듣는다. 옥상달빛 언니들이 나와 연애 이야기를 하고, 영배오빠와 커피오빠는 여전히 웃기다. 슬퍼져서 울 때도 있었지만, 웃을 때가 더 많았다. 먼 길을 여행 갈 때도, 집에 있을 때도 나는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여전히 듣는다.

어쩌면 나는 라디오를 좋아하는 것보다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좋아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튼, 라디오』를 읽으며 조금씩 내 예전 꿈을 되돌아보는 듯했다. 라디오 시간에 맞추어 집에 들어오고, 엄마가 라디오를 사주고... 그런 추억을 다시 되살릴 수 있었다. 라디오 매체 하나로 추억이 무척이나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굴을 보지 않고도 응원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중요한 건 나는 지금 시 쓰기보다 오프닝을 쓰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하고 싶은지 고민이 많은 지금, 『아무튼, 라디오』가 방향을 잡아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라디오

이애월 지음
제철소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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