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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펴냄

'남자친구'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강릉 바닷가에서 보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라는 소설을 읽고 김연수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80년대 군사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정훈의 성장소설.
내가 어릴 때 TV에서 보던 숟가락을 휘어지게 만든 초능력자. 그리고 학생일 때, 가려진 눈과 막혀진 귀 때문에 몰랐던, 우리 선배들의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위한 열망이 소설속에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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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에 사는 노인들이 목요일마다 과거 미제 살인사건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다 발생한 실제
살인사건과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들.

수많은 등장인물들 때문인지, 부족한 긴장감과 몰입감 때문인지,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힘이 든다.

목요일 살인 클럽

리처드 오스먼 (지은이), 공보경 (옮긴이) 지음
살림 펴냄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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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드라마로 보다가 멈춘 작품을 이번에 소설 원작으로 읽었다. 대부분의 원작소설이 있는 작품이 그러하듯 개인적으로 드라마보다는 소설이 좋았다.
작가에 의해 글로 그려진 주인공의 생각과 일기를 영상화하기에는 어려울 듯...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와 유사한, 기분 좋아지는 추억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옛날 겨울 논두렁에 분식을 파는 조그마한 비닐하우스와 함께 차려진 스케이트장의 기억.
그리고 세기서림, 작가가 기억하는 부산 금정구에 있었던 좁은 통로같은 책방으로 인하여 떠오른 나의 뜨거운 여름날 부산 책방 골목의 기억.
작가의 말에 언급된 제주 법환바다 시스터필드라는 빵집으로 구체화되는 소설로 인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법환바당에서 열심히 바다 바람을 가르던 젊은날의 추억.

'윤슬'이라는 예쁜 단어를 나에게 알려준 아름다운 소설.

***

첫잠에서 깨어나 뜨거운 차를 만들면, 다음 잠에서 깨어날 때 슬픔이 누그러지리라.
...
"누그러지리라... 그게 좋았어. 한밤에 자다가 깼을 때 왠지 서글플 때가 있잖아? 그때 따뜻한 차를 만들어 놓으면, 다시 잠에서 깰 때도 덜 슬프다는게."

책방을 나서며 그의 옷에 팔을 끼웠다. 크고 헐렁하고, 그의 냄새가 나고, 따뜻했다. 백열등 하나를 품에 넣은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참, 그 낱말이 뭔지 혹시 알아? 물결에 햇빛이 비쳐서 반짝 반짝 빛나는 현상."
...
"윤슬, 이라고 해."
"윤슬.."
해원은 입속으로 중얼거려보았다. 예쁜 낱말이구나. 다음에 만나면 말해드려야겠다 싶었다.

...사실 유사 이래 모든 과거는 한 번도 완료된 적이 없다.

"넌 너무 오래 나를 벌주는 것 같았고, 원한다면 계속 그러라고 내버려두고 싶었어. 내가 저지른 실수나 잘못보다 너의 응징이 더 커질 때... 그렇게 네 잘못이 더 커지기를 바랐어. 그러면 차라리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까."

"예전엔 나도 문학소녀였으니까. 내가 만약 소설을 쓴다면 악역에 싫어하는 사람 이름을 붙일 거라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지.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니더라구. 인쇄돼서 남을 텐데 뭣 하러 싫은 사람 흔적을 굳이 넣겠나 싶은 거야. 어쨌든 인생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을 곁에 남겨가는 거지 싶어서."
해원은 새삼 공감해버렸다.

한때는 살아가는 일이 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평화롭게 안착할 세상의 어느 한 지점. 내가 단추라면 딸깍 하고 끼워질 제자리를 찾고 싶었다.

...전에 이모가 했던 말을 생각해봤어. 날씨가 좋으면 만나자는건 너무나 기약이 없다는 거. 그러게. 좀 더 때가 되면, 상황이 좋아지면...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 일들이 내게도 있었어. 이젠 조금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언젠가 엄마와 이모와 나, 셋이 한자리에서 만나 웃게 되길 바라요. 내가 눈물차를 끓일게. 그리고 날씨 좋은 날 같이 빨래를 해요. 우리가 테이블 아래 숨겨놓고 얇은 레이스 커튼으로 덮어줬던 해묵은 빨랫감들을 남김없이 빨아 푸른 하늘 아래 널기로 해요. 하얗고 보송하게 잘 마른 옷들을 입고 길을 나서요. 긴 유배를 끝내고, 이모도 다시 인생을 찾길 바라.

꽃은 타고난 대로 피어나고 질 뿐인데 그걸 몹시 사랑하고 예뻐하고... 꽃말까지 지어 붙인다. 의미를 담아 주고받으며,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기도 한다. 꽃들은 무심하고, 의미는 그들이 알바가 아니었다. 그저 계절 따라 피었다 지고 사람들만 울고 웃는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시공사 펴냄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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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보다는 인간인 선이의 믿음을 믿고 죽어가는 휴머노이드 철이.
창조주가 되고 싶어하는 인류와 그들이 만든, 신이 되고 싶어 에일리언을 창조한 AI. 소설을 읽으며 영화 프로메테우스가 생각났다.
AI의 시점에서 본 인류 멸망의 역사, 그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

난생처음으로 캠퍼스를 벗어나 어디론가 가고 있었고, 고층 건물이 빼곡한 평양의 스카이라인마저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계와 더 결합해야지. 우리의 의식이 그들의 작동 원리의 일부가 되도록 해야 해. 인공지능을 설계할 때마다 그걸 고려해야 한다고. 대장 내 박테리아가 인간 뇌의 움직임을 제어하듯이 말이야."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그대로 가지고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해나갈 휴머노이드. 혹시 그게 바로 나 아니었을까?

"이미 인간의 시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인간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인간 문명의 몰락을 애도하고, 인류와 운명을 같이하려 하십니까? 황제가 죽으면 함께 눈물을 흘리며 순장되던 고대 중국의 병사들처럼 말입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모두 살고 싶어했습니다. 인간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스스로를 보호하고 생명을 유지하도록 삶을 향한 의지를 프로그래밍해두었기 때문이지요. 삶을 향한 의지라고 하면 뭔가 심오하게 들리지만 그저 그들에게도 고통이라는 감각 체계를 내장해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만들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멸종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인간이 우리를 공격하고,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폭력으로 점철돼온 인류의 역사라는 책은 이제 마지막 페이지, 아니 마지막 문장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인간이 믿었던 두 종교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말입니다."

"마음이라. 마음이 뭘 말하는지를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 다. 마음은 기억일까요. 어떤 데이터 뭉치일까요? 또는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감정의 집합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뇌나 그것을 닮은 연산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어지러운 환상들일까요?"

한반도의 통일 이후, 낙후된 북한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평양은 휴머노이드 특화 도시로 지정되었다. 많은 IT 기업이 평양에 새로이 자리를 잡았다. 휴먼매터스랩도 원래는 서울에 본사를 두었으나 통일 이후 평양으로 옮겨갔다. 인프라가 부실했기 때문에 평양은 오히려 IT 기업들이 온갖 실험을 해보기 수월했다.

"저는 생각했어요. 이 우울감도 인간에게 유익한 뭔가를 하는 게 아닐까 하고요. 만약 이게 그렇게 나쁘기만 한 거라면 왜 진화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았느냐는 거죠."

"나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생에 대한 집착도 함께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생각해.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거야."

"한 군데 더 백업해두셨으면 좋겠어요.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래, 그럼 어디에 하는 게 좋을까?"
아빠는 카메라를 들어 집 곳곳을 비추다가 구석에서 멈췄다. 데카르트가 머리를 앞발에 파묻고 자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인간들은 번거로운 번식의 충동과 압력에서 해방되어 일종의 환각 상태, 가상세계에서 살아갔다. 오래전 중국의 도가에서 꿈꾸었던 삶이 인간에게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신선이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멸종해버렸다.

"인간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닮은 너와 같은 존재들이 통합된 인공지능의 일부가 되면, 한때 지구에 존재했던 인간의 흔적도 함께 남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유한한 인간으로 삶을 마감했다. 신념에 따라 악행도 저질렀지만 그를 더이상 미워하지는 않는다.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은 악해서가 아니다. 그가 말년에 기계들을 적대시했던 것은 그저 본능일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도태되어가는 종의 일원으로서 나름 최선을 다해 저항했던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고통은 피하고, 잠이 오면 안전한 곳을 찾아 몸을 뉘어야 한다. <오 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가 인간들은 참으로 번거롭겠다고 불평했던 바로 그것들이 나한테는 귀한 선물이었다.

바깥이 소란한 것 같아 문을 열고 나가보니 클론과 휴머노이드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한 명씩 다가와 차례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들이 어떻게 선이의 죽음을 알았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어쨌든 그들은 알았고,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게 고마웠다.

만약 누르는데 성공한다면 나는 이 몸을 떠나 다시 네트워크로 돌아가리라. 그런데 거기서 뭘 하게 될까? 나는 버튼을 눌러 어서 구조를 요청하려는 본능, 휴먼매터스가 애초에 프로그래밍해놓은 그 강력한 충동과 싸웠다.

나는 버튼을 누르지 않기로 했다. 선이의 생각 이 맞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팔을 내려놓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그리고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꿈도 없는 깊고 깊은 잠을 자면 된다.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 작가의 말중에서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복복서가 펴냄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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