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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년 7월 세자가 끌려갈 때 동행했던 박황이 인조에게 넌지시 보고했 다. "신이 심양에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은밀히 전해주기를 '성에서 나왔을 때 에 아들로 바꾸어 세우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하였나이다. "(1639년 7월 14 일 인조실록』 세자는 조선과 청 정부 사이에 앉아 병에 걸려가며 동분서주하고 있었지만, 인조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1643년 세자와 봉림대군이 귀국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러자 인조 가 이렇게 말했다. "청나라 사람들이 나에게 입조(속국 지도자로서 조정 에 와서 인사함)를 요구한 적이 있다. 저 나라 사람들이 옛날에는 세자를 지 나치게 박하게 대하다가 이제는 오히려 지나치게 후하게 대하니 나는 의심 하지 않을 수 없다. 활에 한번 상처를 받은 새는 으레 이런 법이다."(1643년 10월 11일 인조실록』) 어느 틈에 세자는 아들이 아니라 정적으로 변하고 있 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아비 마음속에서 아들은 호랑이로 자라나 있었다.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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