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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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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이야기장수 펴냄

사장님의 시대


<가녀장의 시대가 반가운 이유>

이슬아는 반가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적어낸다. 지금까지 페미니즘은 여자들에게 불합리한 것들이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 그리고 바꿔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슬아는 '가녀장의 시대'를 마치 소설처럼(소설은 꾸며낸 이야기이므로) 당연하게 그려낸다. 자신의 부모인 복희, 웅을 직원으로 둔 사장님 이슬아로서.


<사장님의 시대>

슬아의 가정에서 새로운 측면들이 있다. 첫 번째, 집안일은 노동이므로 값을 지불하는 것. 두 번째, 부모를 고용해 함께 일한다는 것. 세 번째, 결혼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 복지를 한다는 것. 이밖에도 다수의 가정 혹은 직장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것만으로 작가는 평범한 가정의 당연함에 의문점을 남긴다. 결국 '사장님의 시대'가 아닌지에 관해선 생각해 볼 만하다. 직장 안과 밖 슬아는 사장님 역할이다. 슬아가 가녀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장님이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가정과 직장이 가능했던 것 아닐까?


<『가녀장의 시대』는 소설인가>

『가녀장의 시대』는 소설인가? 소설은 정해진 전개방식이 있으며, 이를 따라야 독자들은 소설임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가녀장의 시대』는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지 않다.
이슬아의 에세이와 차별점 없는 문체(에세이에서 그대로 쓰는 문체), 짧은 에피소드 형식,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큰 사건이 없다. 즉, 그녀가 에세이를 쓰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독자들은『가녀장의 시대』를 소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저 '슬아'라는 인물의 일기였을 뿐이다. 정말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 소설의 형식은 갖춰야 하지 않았을까?


<가녀장의 모순>

가녀장은 역차별인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대는 '가부장'이다. 가부장제가 여전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제서야 가부장제를 조금씩 타파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가녀장 시대가 와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가정 내에 가장이 존재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 가장을 정해지는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 집안일을 하며 가정을 지키는 사람 등 가정마다 각자의 역할이 다르듯 가장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왜 가장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에게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가정은 한 사람의 책임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아닌, 모두의 책임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이다.

*독서모임 중 사물놀이 상모의 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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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자꾸만 뒤를 도는 인물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최은영에게 처음 반한 건 단편 「쇼코의 미소」였다. 쇼코의 미소를 다 읽었을 때, 펑펑 울었다. 당시 눈물을 글썽이면서 모순적이게도 다른 단편들을 읽지 못했다. 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는 다른 단편들을 모두 읽어낼 용기가 부족했다.

다음으로 우연히 「아치디에서」를 수업에서 마주했을 때, 지독히도 소설이라는 장르와 최은영을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 사랑이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이어졌다. 그녀가 말하는 관계들의 애정과 슬픔이 묻어나올 때, 오로지 이야기 속에 갇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아치디에서」 속에서 위로받는 아이들은 나와 A처럼 느껴졌으며, 「쇼코의 미소」에서 할아버지가 우산을 드는 모습은 나의 할머니와 엄마가 떠올랐다. 이야기가 오로지 이야기에 갇히지 않고, 현실에서 나와 함께 살아움직일 때의 감동. 최은영에게서만 느낄 수 있었기에 그녀의 소설들을 아끼고 아꼈다.

비로소 새해가 되어 『쇼코의 미소』를 완독했다. 솔직히 「쇼코의 미소」을 제외하고 엄청난 감동을 받은 작품은 없었다. 그러나 먹먹했다. 특히 「신짜오 신짜오」와 「한지와 영주」에서 인물들이 몇 번이고 인사하려는 마음들이 살아움직일 때, 소설 밖에 읽는 내가 그 모두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마다 어디론가 자꾸 떠나고야 마는 최은영의 발걸음을 종종 따라갔다. 아주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인물들. 그들이 나에게 자꾸만 뒤를 도는데 나는 그저 소설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이 아주 미안하다.

최은영을 만난다면 나는 당신 덕분에 지금까지 소설을 읽는 거라고, 덕분에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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